[대구 지하철 사고] 실종자 가족 '삼중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4일 대구시 중구 중앙로역 지하 1층.

시커먼 그을음과 매캐한 냄새가 가시지 않은 곳에 실종자 가족들이 마스크를 낀 채 하염없이 앉아 있다.이곳에 머물며 실종자유가족대책위원회 간부들과 회의를 하고,각종 집회에도 참가한다.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시민회관 소강당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2백여명.유품 등 실종 사실을 뒷받침할 어떠한 증거물도 찾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건 발생 보름째를 맞으면서 이들이 갖가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만성피로에 호흡기와 눈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감기환자도 줄을 잇고 있다.시멘트 바닥에 건축자재인 패널을 깔고 담요로 밤을 지새는 날이 계속되면서 몸살·과로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까지 나오고 있다.3일부터는 기온이 뚝 떨어져 추위에 떠는 겹고통을 겪고 있다.

중앙로역을 지키는 실종자 가족들의 건강 상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시커먼 그을음에서 나는 먼지는 목이 따가울 정도다.눈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이 먼지에는 유독가스 성분이 섞여 있어 숙식을 하는 실종자 가족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진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대구의료원 의사 문지원씨는 “날씨가 춥고 실내 공기도 좋지 않아 감기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대기소에 선풍기 모양의 열풍기를 켜고 옷도 두껍게 껴 입었지만 꽃샘 추위를 견뎌내기도 만만찮다.이들 가운데 10여명은 과로로 곽병원 등지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부인 엄혜정(30)씨를 잃었다는 정정교(35)씨는 “자고 일어나면 팔·다리 등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며 “하루 빨리 신원 확인작업을 끝내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유품 하나만이라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대구역·시민회관·중앙로역에 붙여 놓은 벽보를 보고 행여나 목격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여전하다.

대학생 딸을 잃은 이갑선(47)씨는 “불편함이야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지만 먼저간 아이를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며 “유품 한 점만 찾으면 장례를 치를 작정”이라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