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황토물인가, 살구빛인가 … 담담한 치유 , 김호석 개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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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훈훈한 정을 그리워한 김호석씨의 수묵화 ‘바람 목욕’. [사진 김호석]

독사(毒蛇)의 독이 독하다 한들 사람이 사람에게 품는 독만큼 독할까.

 화가 김호석(56)씨는 지난 몇 년 새 사람들이 내뿜는 독에 치여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불신이 법정으로 갔고, 반구대 암각화를 놓고 벌어지는 다툼에 묻어 들었다. 멀리 떠날 수도, 돌아 앉아 침묵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가 의지한 것은 그림이었다.

 11월 5일까지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여는 ‘그리움이 숨 막혀 그림이 된 김호석 붓’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소낙비처럼 몰아쳐 그린 근작전이다.

 세상을 노려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담은 ‘칼눈’은 자화상 같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한 몸처럼 엮은 ‘바람 목욕’은 아직 놓을 수 없는 인연의 끈을 생각하게 만든다.

 옅고 짙은 먹의 농담으로 담담하게, 때로 거칠게 그려나간 세필의 꼼꼼함은 그의 마음에 응어리진 분노의 바위를 붓질로 깨부수려는 듯 보인다. 치유의 붓이다. 황토물을 걸러 뽑아낸 살구빛 안료는 그의 성정을 드러낸다. 아직 마음은 곱고 붉다. 성철 스님, 김구 선생 등 수십 명 시대의 인물들을 불러내 조선시대를 잇는 초상화 기법으로 우리 곁에 되살려냈던 그의 그림이 이번에는 자신을 다시 세우는 깃발이 되었다. 02-733-1981.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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