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파괴의 죄 용서를 … 회개로 하나 된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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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가 30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했다. 오전 개막 예배에서 아르메니아 정교회 수장인 카레킨 2세 총대주교가 설교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30일 오전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가 열린 부산 벡스코 행사장. 기독교인의 유엔총회라고 불리는 WCC 총회는 회개와 용서를 비는 기도로 시작했다. 개막 예배 첫 머리, 아프리카·아시아·카리브 등 전세계 7개 대륙·지역 대표가 돌아가며 신에서 멀어졌던 자신들의 과오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유럽 대표가 예배장 중앙 단상에 올라 ‘유럽의 울부짖음과 소망’이라는 기도를 독일어로 낭송했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진보와 기독교 영성을 대표하는 대륙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전쟁과 식민지 착취, 인종차별, 대량학살 등 죽음의 유산을 대표하는 무리들이라는 것을 자인한다”는 내용이었다.

 기도자 옆에서는 남미 출신인 듯한 여인이 시종일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검은 재를 연상시키는 가루를 연신 몸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제국주의 시절 유럽의 피해자를 상징하는 듯 했다.

 같은 형식으로 북미 대표는 자신들이 “가난한 나라의 자원을 파내며 처절하게 환경을 파괴했다”고 고백했다. 영어 기도를 통해서다. 중동 대표는 스페인어로 “우리들의 공동체 안에 관용의 씨앗을 심어달라”고 빌었고, 아시아 대표는 “반복적으로 폭행당하는 소녀와 여성의 눈물과 신음 속에서 주님을 뵙는다”고 고백했다.

개막 예배 순서에서 한 공연자가 교회의 과거 잘못을 회개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각각의 기도 사이에는 남아프리카 민요를 바탕으로 한 찬송가 ‘센제니나’(Senzenina·무얼 했나)가 흘렀다. 종파를 초월해 기독교 영성을 추구하는 간결하고 경건한 음악이었다.

 WCC 부산 총회가 다음달 8일까지 열흘간의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30일 개막 예배는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칼(ecumenical) 운동의 가치를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에큐메니칼’은 ‘만물이 사는 온누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 뿌리를 두고 있다. 원래 하나였으나 인간의 교만으로 분열된 데 이어 1·2차 세계대전으로 존재 의의를 위협받게 된 기독교가 차이와 다름을 넘어 다시 하나됨을 꾀하자는 뜻이다.

 이번 부산 대회에는 해외 2800여 명 등 국내외 8500여 명이 참석한다. 경제유발 효과가 500억∼600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다. 시리아·아르메니아·에티오피아 정교회 수장, 테제공동체 대표, 영국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 인도네시아 이슬람 대표, 201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리머 보위 등 전세계 종교 지도자가 대거 모인다.

 매일 90분씩 4일간 열리는 21개의 에큐메니칼 좌담, 88개의 워크숍과 85개의 전시회는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WCC의 원칙에 충실한 각종 이슈와 운동의 박람회가 될 전망이다. 기후변화·빈곤퇴치·중동평화 등 전지구적 주제부터 교회부흥·에큐메니칼 운동의 전망 등 교회 내 현안까지 다룬다. ‘성(性)에 관한 대화’ ‘교회 권위의 근거는 무엇인가’ 등을 논하는 워크숍도 열린다.

 한국 대표대회장인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담임)는 개막식 인사말에서 “한국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북핵의 위협으로 인한 고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이번 총회는 온 인류를 살리는 축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총회 주제인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와 관련, 한반도 평화에 관한 총회 선언이 채택될 수 있음을 암시한 발언이다.

 미국 오클라호마 제일장로교회의 매트 마인키 부목사는 개인 자격으로 총회에 참석했다. WCC 총회의 의의를 묻자 그는 “내가 목회하는 교인들 사이에도 항상 다툼이 있다”며 “구체적인 성과를 바라기보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신준봉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WCC(World Council of Churches)=1·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에서 1948년 출범한 교회간 협의체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기독교적 해법을 찾자는 취지다. 현재 140개국 349개 교단이 회원으로 있다. 협의회 소속 신자가 5억7000만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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