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속보이는 보궐선거 회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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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한달만 어떻게 버티면 되지 않겠어요. 어차피 새 정부 초기라 굵직굵직한 현안이 한둘이 아닐테니 조용히 시간만 좀 끌다 보면…, 잘 될 겁니다. "(민주당 당직자)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가 아닌 민주당에 낸 것은 보궐선거를 회피하려는 속보이는 꼼수로 3권분립이란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한나라당 裵庸壽 부대변인)

4일 여야는 문희상(文喜相) 청와대 비서실장의 의원 겸직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文실장은 새 정부 출범 하루 전인 지난달 24일 민주당을 방문, 탈당계와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 그는 경기 의정부에서 당선된 지역구 출신이다. 하지만 이 사퇴서는 국회로 넘어가지 않고 민주당에 보관돼 있다.

이에 한나라당 측은 "4.24 보궐선거를 회피하려는 얄팍한 술수"라며 연일 공격하고 있다. 선거법 35조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만 의원직을 유지하면 4월 보선 대상 지역에서 빠진다. 다음 보선 때는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 된다. 그러면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보궐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여권도 이 같은 의도를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역구에서는 이겨야 본전이고, 패할 경우 체면만 구겨질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당당한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작은 이해를 따지다 큰 명분을 잃는 일이다.

또 보궐선거가 없을 경우 의정부 주민들은 지역대표 없이 17대 총선까지 가야한다. 결국 이 문제는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文실장이 풀어야 한다. 직접 국회에 사퇴서를 내야하는 것이다.

박신홍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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