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보」 내도…주말의 하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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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한적십자사가 남북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제의한데 대해 14일 정오 북한적십자사가 낮 방송을 통해 이를 수락하고 판문점에서 공식서한을 수교한다는 보도가 있자, 온 국민은 이 「뉴스」에 귀와 눈을 모았다. 국민들은 『저들도 같은 핏줄을 나눈 민족이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지』라면서 환영했으나 한편으론 『그들이 회답일자와 장소만을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는 한 속셈을 알기 위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신중론을 펴기도 했다. 거리나 다방 등에 몰려나온 서울시민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 소식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정치적인 차원을 떠나 이 회담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좋은 결과를 가져와 20년 이상 헤어졌던 가족이 서로 서신왕래만이라도 이루어져 소식을 알 수 있도록 바란다』고 희망찬 기대를 걸고있었다.

<거리의 표정>
북한적십자사의 반응에 대한 급보가 보도된 이날 낮 서울의 각 신문사게시판 앞거리는 시민들로 꽉 차 있었고 급보가 실린 신문도 날개 돋친 듯 나가는 등 서울도심의 거리는 흥분과 생기로 온통 설렌 듯 했다.
서소문·시청 앞·종로「택시」와 「버스」정류장마다 줄지어선 행인들은 차를 탈 생각도 잊은 채 신문가판을 사들고 웅성거렸으며 토요일오후 거리를 메운 행인들은 밀리는 인파 속에서도 저마다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날 낮 1시30분쯤 수금하러 시청 앞을 나왔다가 신문을사든 김이섭씨(53·서울 을지로4가·본적 평북)는 고향에 두고 온 맏딸 혜자양(28)의 소식을 『이제야 들을 수 있게 되는가보다』며 수금도 잊은 채 생기에 넘치는 얼굴로 집으로 급한 발길을 옮겼다.
또 친구들과 함께 시청 앞을 지나가다가 「뉴스」를 본 연세대상학과3년 김모군(23)은 『북괴의 반응으로 20년 막혔던 남북간의 민족의 핏줄이 다시 살아난 것 같다』며 기뻐하면서 『남북간에 민족정신에 입각, 이 회담을 계기로 통일에까지 나갔으면 좋겠다』고 기대에 찼다.

<대한적십자사>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적십자사가 남북가족 찾기 제의를 수락하는 공한을 판문점을 통해 건네주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토요일하오 막 퇴근준비를 하던 전직원37명에게 특근령을 내리고 정상근무를 지시했다. 이때 최두선 총재와 사무총장 등 고위간부들은 외출 중이었다.
식사도중 연락을 받고 급히 사무실에 돌아온 김호진 공보부장은 밀어닥친 60여명의 보도진에 『총재나 사무총장이 공식적인 이야기를 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신중을 기하기도.

<이북5도청>
이북5도청에서는 『올 것이 왔구나』하는 가벼운 흥분감과 이번 회담이 순수한 인도적 견지에서 이루어져 대한적십자사의 제안이 실효를 거두기를 바라는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상오11시부터 5도청 함남지사실에서는 5도 지사와 5도민 회장들이 모여 북괴의 수락을 촉구하는 시민대회를 열 준비를 논의하다가 이 소식을 듣고 유회됐다.
김영훈 이북5도민 연합회의장과 이신득 위원장은 『수락을 환영한다. 그러나 과거 그들이 보여준 바와 같이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러 들지 말고 순수한 인도적 견지에서 운동이 열매를 맺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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