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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보다 세금 더 떼는 벤처 스톡옵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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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한 제조 벤처기업에 7년째 재직 중인 박모(45)씨는 지난해 스톡옵션을 행사한 뒤 매각해 2억원의 차익을 올렸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박사 출신으로 대기업을 마다하고 무명 벤처에 뛰어든 데 따른 합당한 보상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박씨는 세금고지서를 받고 당황했다. 그의 스톡옵션 차익은 연봉(과표 기준) 1억원과 합산돼 35%의 소득세가 부과됐다. 이 때문에 회사에서 원천징수한 총 근로소득세는 9911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그는 몇 달 뒤 세무사와 얘기를 나누다 납득할 수 없는 점을 발견했다. 만일 박씨가 로또 2억원에 당첨됐다면?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는 씁쓸했다. 로또는 기타소득으로 20% 세율로 분리과세된다. 그가 로또로 2억원을 벌었다면 총 소득세는 6611만원이 된다. 박씨는 로또 세금과 비교해 3300만원의 세금을 더 낸 셈이 됐다.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벤처 육성책을 쏟아내면서도 막상 핵심인 스톡옵션 규제는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벤처업체가 인재를 끌어들이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스톡옵션인데 규제와 세금 때문에 매력도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벤처인들의 문제 제기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스톡옵션 차익을 근로소득으로 합산해 과세하면서 세금이 최고 38%에 이른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주식을 처분할 때 세금을 매기는 게 아니라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주식을 취득할 때) 과세하면서 스톡옵션 행사를 어렵게 하거나 또는 주식처분을 강제한다는 점이다. 세금 때문에 스톡옵션 행사를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 동안 주가가 올라 세금 폭탄을 맞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중앙일보 8월 27일자 B1면, 28일자 B1면, 29일자 2면과 B3면>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스톡옵션에 로또보다 높은 세금을 매기는 건 스톡옵션이 이른바 ‘배 아픈 소득’이기 때문”이라며 “스톡옵션 규제완화 같은 기본적인 것도 안 하면서 무슨 창조경제를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벤처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다. 새누리당 창조경제특위는 8월 말 스톡옵션 과세 완화를 골자로 한 23개 정책 대안을 마련했으나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논의는 진척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스톡옵션은 일종의 현물 보너스이기 때문에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 근로소득세로 합산 과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정부가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과세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얼마든지 세금 부담을 완화해 줄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얘기였다. 현행 방식이 징수 편의성만을 고려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과세 시점에 대해 기획재정부 문창용 조세정책관은 “미국은 실제 주식처분 시점에 과세한다지만 우리와 달리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기 때문에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설명은 달랐다.

미국 스톡옵션제도는 우리처럼 근로소득세가 부과되는 일반적인 스톡옵션(NQSO)과 추후 주식처분 시점에 양도소득세(Capital gain tax·자본이득세라고도 함)로 과세되는 ‘인센티브 스톡옵션(ISO)’을 모두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직원들에게는 세금이 적어 인센티브 효과가 큰 ISO를 부여하는 게 보통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기업정책실장은 “미국처럼 스톡옵션 행사 시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말고 추후 양도소득세로 과세하는 ISO를 도입하면 세금폭탄도 막고 조세 형평성도 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세법상 벤처기업의 경우 대주주에게는 주식 매매에 따른 양도차익의 10%를 과세하고 있는데, 스톡옵션 행사자에게 이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면 적절하다는 논리다.

 세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톡옵션에 대한 세목을 굳이 근로소득세에서 양도소득세로 바꾸지 않아도 얼마든지 세금 폭탄을 제거할 수 있다. 과세 시점을 연기해 줘 초기 벤처기업 시절에 스톡옵션 행사를 쉽게 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이럴 경우 스톡옵션 권리 행사(주식취득) 후 주가 상승분은 과세되지 않아 보유자 입장에선 세금이 크게 절감된다. 정재욱 대전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금은 스톡옵션을 행사하는 시점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세금 마련을 위해) 주식처분을 유도하는 역효과까지 생기고 있다”며 “정부가 과세원칙 운운하지만 진짜 이유는 지금 방식이 회사에서 원천징수해 편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세법 전문가들은 현행 방식처럼 현직자는 근로소득세, 퇴직자는 기타소득세로 부과하는 방식을 기타소득세로 통일하되 분리과세하거나 필요경비를 인정해 주는 방식으로 스톡옵션 세금을 낮춰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재직자에게 근속연한만큼 일정액을 공제해 주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창남 교수는 “지금처럼 스톡옵션을 통상의 소득으로 봐서 과한 세금을 부과하면 스톡옵션은 점점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며 “벤처붐을 위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때”라고 강조했다.

윤창희·정선언·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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