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내신 2등급 한 학기라도 있으면 학과 경쟁률까지 따져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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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진학을 준비 중인 김모(15·서울 대치동)군은 입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고민에 빠졌다. 대원외고에 가고 싶지만 영어 내신성적이 걸린다. 중2 때는 모두 1등급을 받았지만 3학년 1학기 때 2등급을 한 번 받은 게 문제다. 지필평가에서는 만점이었지만 수행평가 때문에 등급이 떨어졌다. 김군은 “대원외고는 전 학기 1등급이 아니면 원서도 쓰지 말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요즘 김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올해는 외고 입시 경쟁률이 올라갈 전망이라 전략을 잘 짜는 게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 교육부 정책에 따라 모집 인원이 지난해 1856명에서 1682명으로 174명(9.4%) 줄었고, 국제중에서 비교내신이 폐지돼 일반중 학생의 지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수시모집에서 수능 영향력을 줄이는 대입 정책 때문에 정시모집 비중이 커질 것”이라며 "정시에 강세를 보여 온 외고로 학생들이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대원·한영·명덕·대일·이화·서울외고와 서울국제고 모두 동일한 방식이다. 정원 1.5배수를 선발하는 1단계는 중학교 2·3학년 영어 내신성적과 출결이 평가 요소다. 각 학기별 40점씩 총 160점이고, 출결은 중1 때부터 반영하는데 무단결석 하루에 1점씩 감점이다. 최종합격자는 1단계 점수(160점)와 2단계 면접 점수(40점)를 합산해 선발한다.

 전형이 이렇게 이뤄지니 1단계에서 영어 내신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미애 사론코칭앤멘토링 대표는 “모든 학기가 1등급이면 1단계는 무조건 합격이지만, 2등급이 한 학기라도 있으면 학교·학과별 경쟁률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반전형 경쟁률은 대원외고가 1.23대 1, 한영외고 1.71대 1, 명덕외고 1.54대 1, 대일외고 1.7대 1, 이화외고 1.71대 1, 서울외고 1.32대 1, 서울국제고 2.03대 1 등이었다. 당시 대원·서울은 지원자 모두 1단계에 합격했다. 임 대표는 “외고 입시에서도 눈치작전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2개 학교나 2개 학과의 서류를 동시에 준비해 경쟁률을 보고 막판에 지원하는 전략을 써봄 직하다”고 조언했다.

하늘교육이 지난해 1단계 합격생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결과 영어 내신성적 평균은 대원이 1.14등급이고, 한영 1.6, 명덕 1.42, 대일 1.46, 이화 1.81, 서울 2.16등급이었다. 서울국제고는 1.08등급이었다. 비록 지난해는 1단계 지원자 전원을 합격시켰지만 대원은 2등급이 하나라도 있으면 실제로 1단계 합격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반면 한영외고는 2등급을 2개 받아도 1단계를 통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다. 학교 내신이 만점이어도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못 받으면 당연히 불합격할 수 있다. 김영민 명덕외고 입학홍보부장은 “1단계의 학기별 점수 40점(총 160점) 중 1등급과 2등급의 차이는 1.6점에 불과하지만, 40점 만점인 2단계 면접에서는 최대 10점 이상 차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4학기 모두 1등급인 학생이 2단계에서 10점 감점을 당하면 총점이 190점이고, 두 개 학기가 2등급인 학생이 면접에서 만점을 받으면 총점이 196.4로 더 앞선다. 면접에서 충분히 뒤집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2단계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자기개발계획서를 잘 써야 한다. 자기개발계획서 자체를 평가하진 않지만 면접관들이 이를 토대로 질문을 던진다. 자기개발계획서는 중학교 시절의 자기주도학습과정(600자), 지원동기·학습계획·진로계획(400자), 독서활동(500자), 인성영역(800자) 등 크게 4가지로 구성돼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올해부터 토플·토익·텝스 등의 인증시험 점수는 물론 경시대회 수상 실적과 영재교육원 수료 여부 등을 전 과정에서 간접적으로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거다. 지난해까지는 ‘열심히 준비해서 영어인증시험에서 최고 점수에 도달했음’ ‘학교 대표로 각종 대회에 출전해 매우 우수한 결과를 얻었음’과 같은 우회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지를 안 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를 어길 시에 각 학교 입학전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감점하거나 불합격 처리한다.

 자기개발계획서는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쓰는 게 핵심이다. 자기주도학습과정에 대해서 쓸 때도 “수학 과목에 흥미를 느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가 아니라 “중학교 1학년 때 대학교 수학과 학생이 푸는 문제를 한 달에 걸쳐 해결한 뒤 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그 뒤에 대학교 수학 교재를 구입해 푸는 훈련을 했습니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수학의 정석』 개념부터 다시 익혔습니다”와 같이 사례를 들어 표현하는 게 좋다.

 자신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없는 얘기를 지어내거나 과장하면 안 된다. 대원외고 1학년 자녀를 둔 김혜원(41·대치동)씨는 “인성영역을 쓸 때 봉사활동에 대한 스토리를 억지로 만들어 갔는데 면접에서 대답을 못했다”며 “갈등이 생긴 친구들을 화해로 이끈 경험이나, 조별 과제를 해결할 때 조원들의 의견 차이를 어떻게 조율했는지 등 자신이 겪은 일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작성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 중학교 때 활동을 모두 나열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면접은 면접관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대원외고 1학년 이용주군은 “예상 질문과 답을 노트에 적었더니 2~3권이 넘었다”며 “초등학생 멘토링 봉사활동에 대해 자기개발계획서에 썼으면 ‘멘토링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멘토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나’ ‘인생의 멘토는 누구인가’처럼 한 영역당 30~40개 질문에 답을 적어봤다”고 말했다.

왼쪽 QR코드를 찍으면 2013학년도 외고·국제고의 면접 질문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면접 환경과 비슷하게 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원외고 1학년 이윤형군은 자신이 평소에 가장 무서워하는 친척 어른을 면접관으로 두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부터 자리에 앉은 뒤 질문에 답하고 나오는 것까지 연습했다. 이 상황을 카메라로 찍어 말의 속도와 얼굴 표정, 태도 등을 교정했다.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위 QR코드를 찍으면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보려면 joongang.co.kr/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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