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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 화해 기류에 냉담|특정인 구명 아닌 사법권 침해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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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법 파동은 6일째를 맞았다. 평행선으로 치달은 사법권과 검찰권의 다툼을 사이에 두고 1일 사법부와 검찰의 고위 간부들은 주말의 폭염도 잊고 서로 명분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내놓았다. 서울 민·형사 지법의 판사나 서울지검의 검사 등이 다툼의 일부 당사자들은 휴가도 취소하고 각각 법원과 검찰에 나와 해결의 무드를 탐색하기나 하려는 듯, 서로 집무실에 모이면서 얘기를 주고받으며 깊은 관심을 나타내 보였다.
일부 판사들은 여전히 『사법권 침해를 막아야 한다』고 강경히 주장하며 이날의 대법원 행정 회의에 따른 민복기 대법원장의 소신 있는 발표에 관심을 갖기도 했으며, 검사들은 신직수 법무장관이 『불기소 처분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이상 검찰이 어떻게 화해 무드를 조성해 주느냐』고 역시 엇갈린 감정을 드러내 고위층들의 화해 노력에도 아직도 법가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법원·검찰>
사법 파동을 수습하기 위한 첫 노력으로 검찰이 문제된 이범렬 부장 판사 등에 대에 불기소 처분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은 다음의 2일 상오 검찰은 『이번 제의가 사태 수습을 마련할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으나 법원 측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회답이 없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 한 검사는 지난 1일의 법원·검찰 수뇌진 회담에서 검찰이 보인 양보에 법원은 불만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태를 해결해야지 자기들 주장만 계속 고집한다면 몰지각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법원 자체의 해결을 기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사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특정인의 기소·불기소나 동료 판사를 구제하기 위한 구명 운동이 아니었던 만큼 근본적인 요구에 대한 회답을 기대했다. 한 법원 간부는『도대체 동문서답이다. 사태는 이 정도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의 이번 노력이 자체 부정을 감싸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검찰이 사법부를 침해한 조항 등에 대한 회답은 하나도 없다』고 행정부 측의 솔직한 해명이 없는 한 이번 파동이 장기화할 것을 비쳤다. 이날 박승호 서울 민사지법 수석 판사실에는 김준수 송영규 김영준 차상근 김덕주 부장 판사 등 간부진이 모여 법원·검찰 수뇌 회담에 따른 앞으로의 행동 방향을 논의하는 한편 이날 상오에 열리는 대법원 행정 회의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서울지검 검사장실에서는 박·서 양 차장 검사가, 최대현 공안부장실에는 김종건·이규명 검사 등이 모여 수사 결과의 처리에 대한 숙의를 했다.
문제의 이범렬 부장 판사는 보통 때와 다름없이 이날 상오 9시 출근, 자기 방에서 기록 검토를 하고 있었으나 『문제는 남아 있다. 나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라면 그만하면 좋다. 그러나…』하고 말을 잇지 못하고 굳게 업을 다물었다.
송명관 서울 형사 지법 원장은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휴가를 취소, 아침 일찍부터 유태흥 수석 부장 판사를 불러 사태 진전에 대한 논의를 했고 민사 지법도 임기호 원장이 휴가를 취소했으며 휴가자 28명 중 허규 부장 판사·유경희 판사 등 7∼8명이, 형사 지법의 휴가자 19명 중 4∼5명의 판사가 이날 아침 출근, 동료들과 굳은 표정으로 이번 사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 고법>
2일 상오 서울 고법 판사들은 검찰의 사법부 침해를 크게 우려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법부 침해가 다시없도록 대책을 세워 달라고 법원 및 검찰 책임자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서울 고법 정태원 수석 부장 판사 등 고법 판사 일동은 이날 상오 10시부터 정 수석 부장 판사실에서 전체 회의를 갖고 사태 수습에 대한 숙의를 한 뒤 대법원 행정 회의에 보내는 건의문을 작성, 발표했다.
이날 전체 회의에는 46명의 고법 판사 중 휴가자를 제외한 전원이 참석했다.
건의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번 서울 민사지법에서 지적한바 있는 검찰의 재판에 관한 7개항의 사례는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심각한 문제로 생각한다.
따라서 법원 및 검찰의 책임자는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절대로 없도록 유효 적절한 방책을 조속히 수립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그 귀추를 예의 주시한다. 8월2일 고법 판사 일동』.

<대구 고법>
【대구】2일 상오 10시20분쯤 대구 고법 이존웅 수석 부장 판사 등 판사 12명은 이번 서울 형사 지법 판사 2명에 대한 검찰의 구속 영장 신청 사건과 이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발언을 두고 사법권 수호를 위한 선언문을 채택하고 행정부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를 중지하지 않을 경우 극한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사태 수습이 단순한 생각으로 그치고, 이미 세상에 공개된 여러 가지 사법권 침해 사실이 시정되지 않은채 망각을 강요한다면 이는 누를 다시 다음 기회에 미루는 불량한 결과 밖에 남기지 않으므로 차제에 이성에 의한 제도상의 보장이나 기타 그에 수반된 구체적이고도 적절한 조처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강구되어 구악이 발본색원될 것을 절규한다고 했다.

<부산 지법>
【부산】신직수 법무장관의 『백지화하겠다』는 내용의 공식 발표에 대해 2일 부산 지법 판사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주 지법>
【청주】지난 31일 서울 지방 법원의 판사들과 거취를 같이 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는 청주 지방 법원의 노병인 수석 부장 판사 등 6명의 판사들은 2일 신 법무장관의 「백지화」성명의 뒤에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우리의 행동은 두 판사의 구명 운동이 아니라 사법권의 수호를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대법원에서 열리고 있는 사법부와 법무부의 회의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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