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통·침묵 속에 팽팽한 긴장|법원·검찰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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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직법관 2명에 대한 수회혐의의 구속영장이 신청되고 기각결정이 있은 후, 서울형사지법판사들의 일괄사표제출, 민사지법판사들의 성명서발표 등 사법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격동을 겪은 28일의 검찰과 법원의 주변은 표면상으로는 안정을 잃지 않았으나 무거운 침묵 속에서 침통한 표정이 엇갈렸다. 29일 법관들은 보통 때와 같이 사건기록을 검토하거나, 법복을 입고 공판정으로 향했으나 착잡한 표정이었으며 동료법관들끼리 농담도 주고받지 않는 등 밝은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찰·법원이 모두 재 신청한 구속영장의 처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의견을 나누며 시종 긴장감에 싸였다.

<영창의 재 신청>
이 부장판사 등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28일 밤 공안부 최대신부장검사실엔 최 부장 검사와 두 판사의 영장을 청구했던 이규명 검사, 그리고 이방택 피고인 사건을 처음 수사했던 김종건 검사 등이 이날 밤늦게까지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오 8시30분쯤 최 부장검사는『영장을 재 청구하겠다』고 말하고『판사의 심증을 굳히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영장에 범죄사실을 풀어쓰겠다』고 밝혔다.
밤 9시30분쯤 1시간동안 외출했던 이 검사가 돌아와 11시15분까지 영장초고를 끝낸 후 최 부장 검사실에 들러 최 부장 검사와 김 검사가 자정쯤 퇴청한 후 29일 정오 0시10분쯤 이 검사는 지검서기 2명을 불러 영장신청서를 쓰게 한 다음 상오 2시30분쯤 깊이 잠든 법원 숙직원을 깨워 영장을 접수시켰다.
한편 당직판사인 장수길씨는 이날 하오7시30분부터 하오10시까지 일반영장처리를 끝내고 서기를 시켜 당직검찰에 청구 할 영장이 더 있는가 알아보게 한 다음 신문을 뒤적이다 하오11시30분쯤 퇴청했다. 재 신청된 영장은 29일 상오 백종무 부장판사가 받아 심리했다.

<1차 영장기각>
28일 영장담당인 전태흥 부장판사는 28일 아침『두툼한 사건기록을 샅샅이 읽어야하기 때문에 하오5시에서야 결정이 있을 것』이라면서 긴장된 표정으로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예정보다 3시간이나 빠른 하오2시30분쯤 기각결정을 했다.
『기각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라고만 했을 뿐 입을 다물었다.
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이 나돌자 서울지검은 검사장실에서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재 신청할 것인지의 여부를 논의하는 등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일괄사표제출>
하오3시30분쯤부터 합의8부 재판장인 전상석 부장판사가 아침에 사표를 냈다는 소문이 나돌자 형사지법 판사들이 8부 판사실인 726호실에 모여들기 시작, 그 동안의 침통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이 부장판사와 최 판사의 불운한 사정을 동경하면서 앞으로의 대책을 토의했다.「셔터」까지 내리고 문을「노크」하는 동료판사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등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열띤 주장이 오고갔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콜라」로 목을 축여가며 2시간동안이나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았으나 『법관은 집단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다수의견에 따라 검찰의 압력에 버틸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각자가 사표를 쓰기로 했다.
굳게 잠겼던 문이 열리고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법관들이 나왔다. 자기 방이 아닌데도 그 자리에서 사표를 쓰는 법관들도 적지 않았다.『일신상의 사정으로 사직코자합니다.』사표제출의 이유는 모두가 같았다.
흰 봉투와 누런 봉투 등에 담겨진 사표는 유수석 부장판사실로 올렸다.
사표를 내는 판사들이나 이를 받는 유수석 부장판사는 서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을 뿐 한마디의 말도 없었으나 눈시울들은 붉게 물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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