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 정책의 기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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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정희 대통령은 지난 5일 경제 기획원에서의 경제 동향 「브리핑」에서 환율 인상 뒤의 물가 안정에 힘쓰라고 강력히 지시했다 한다. 지난 열흘간의 주요 물가의 움직임이 종합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나 개별적으로는 수입 물자의 가격 앙등과 품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에 덩달아 환율 인상에 따른 「코스트·푸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반 상품들도 들먹이고 있는 것 같다.
당국은 수입 물자 가격이 벌써 전반적인 앙등세를 보이고 있는 까닭은 업자들의 출고 조작과 매점매석 행위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사실은 곧 환율 인상의 충격이 이미 심리적 파급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간 정부는 재정·금융의 제한적 집행, 원자재 공급의 촉진 등 일련의 보완 대책을 세우긴 했으나 당면 물가 대책으로서의 임상적 조치는 주요 33개 품목의 가격「체크」, 특관 세액의 변동과 결부된 몇몇 품목에 대한 규제 등 여전히 행정 수단에 의한 물가 통제의 범위를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서 물가에 예민한 일반 국민과 업계에 대하여 조금도 불안을 불식해 주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경제가 자유 가격 기구 위에서 운영 되고 있는 한 6·28 환율 인상에 따른 원가고의 요인은 이를 행정력만을 가지고 일률적으로 억압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라 하겠으며, 따라서 지금까지 걸핏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강압적 수단을 통한 물가 억제 기능은 이미 그 한계를 노정시키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물가 당국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 이상 심리적 영향이 심화되기 전에 우리 나라 가격 체계 전반에 걸쳐서 정상적 물가 「메커니즘」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물가 정책을 발표함으로써 가수요의 증대, 투기 행위의 성행, 가격 조작의 편승 등으로 인한 악순환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날로 심각해 가고 있는 물가 불안은 당국 자신이 환율 인상 조치를 단행한 이유가 그랬듯이 스스로 가격 변동 요인을 인정하면서도 이와 같은 요인에 적합한 합리적인 방안을 여러 정치적 이유 때문에 물가 정책면에 반영시키지 않고 있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가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실정은 이미 행정력 동원의 효과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환율 인상에 따라 전 상품에 걸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게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가격 체계 전반에 걸친 합리화 조치는 빠르면 빠를수록 실효 있는 물가 대책의 핵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원료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원면·원모·고무·원당·원맥 등 주요 공산품 가격은 그 원자재 값이 오름으로써 국내 가격을 이 이상 인위적으로 억압하는 데에는 한계에 도달했다 할 것이며 따라서 물가 당국으로서는 이미 파악하고 있는 재고 조사를 기초로 하여 보다 합리적인 선에서의 원가 계산표를 작성함으로써 도리어 환율 인상에 편승하려는 일부 업계의 책동을 막고, 뒤숭숭한 물가 불안의 내재적 요인을 근원적으로 해소시켜야 하겠다는 것이다.
6·25 조치가 노린 경제적 효과는 물가의 안정이 그 열쇠가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하루바삐 물가의 동요를 수습하고 환율의 안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인 물가 정책을 제시해 주기를 우리는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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