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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얼마 전 시골에 사는 언니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온 일이 있었다. 경부선 철도 변에 있는 우리 집에 온 날부터 이 아이를 사로잡은 건 소리를 내지르며 사뭇 기세 좋게 달리는 기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이가 여지껏 보아온 건 이따금씩 하늘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사라지는 비행기뿐이었으니까.
「외할머니, 북 치는 차 가는데 왜 아침 안해. 」 며칠을 지낸 후 새벽, 눈을 뜨고 누워하는 소리다. 희안해 하며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니 저 소리 들어보란다. 그러고 보니 석탄을 때는 화차가 정말 북을 둥둥 치며 가는 것처럼 들렸다. 벽에서 시계가 뚝딱거리며 가고 있는데도 이 아이는 어떤 상황을 통해 시간을 어림하는 습관에 젖어버린 모양이다. 달이 밝으면 새벽녘을 어림 할 수 없어 아침을 해놓고 몇 시간씩 기다린다거나 비가 오는 날은 저녁식사가 으레 두 세 시간씩 이르다는 시계 없는 촌 마을 얘기.
쌀값이 오른다고 아우성 치는 도시엔 「텔리비젼」「안테나」가 날로 늘어나도 그 비싸다는 쌀을 생산하는 시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별로 없다. 마치 서울 부산간을 네 시간만에 주파한다는 초특급 호화판 열차가 달리는 「레일」위로 새벽마다 북을 치며 다니는 화차가 아직도 구르고 있는 것처럼 아무래도 시급히 구제해야만 할 우리의 농촌, 새로 뽑힌 위정자들에게 어떤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이 농민들의 허황된 욕심이 아니란 것을 그들은 알았으면 한다. <민영님·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병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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