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적 복원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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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어느 조직 「갱」단의 범죄에 대한 유일한 증인이 갑자기 죽었다. 검시결과는 자살이었다고 경찰은 보고했다.
여기 의문을 품은「엘리어트·네스」가 수사에 나섰더니 진짜 검시보고서는 온데 간데 없어졌다. 시체도 화장한 다음이었다. 미국의「텔리비젼·드라머」『언터처블』의 어느 날의 「에피소드」였다.
지난번 5·25 총선 때 목포에서 일어난 투표지 분실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김창수 선관위원이 최근 열차에서 추락 변사했다. 검찰 측에서는 단순히 김씨가 술 취해 죽은 우발사고라고 단정해서 발표했다.
이 두개의 전혀 시공을 달리한 얘기들에서 즉각적으로 「어낼러지」(유사성)를 찾게되는 것은 공연히 우리가 불신의 풍조에 물들어 있기 때문일까? 또 그런 불신감을 가진 사람만이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지? 빈사 상태에 있는 김씨를 처음중학생이 발견했을 때는 김씨 것으로 보이는 구두와 피가 흥건히 괸 「비닐」 보따리가 철길 곁에 있었고, 갈기갈기 찢긴「샤쓰」를 입고 있었다한다. 그러나 중학생의 신고로 순경이 달려오고 또 그의 주선으로 철도보선 차가 김씨를 나르러 왔을 때에는 구두도 보따리도 없었다고 한다.
또 의사의 진단에는 치명상인 뇌진탕 외에도 머리·어깨·목 등에 심한 열상이 있었고 멍이 들어있었다는 얘기다. 도시 술 취해 달리는 열차 밖으로 떨어져 죽는다는 것부터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또 그 흔치않은 추락사 때 그렇게 피가 낭자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중요한 증인을 동행해 가면서 일반객차에 반대 정당원과 함께 태우고, 그를 호송하는 형사들은 오히려 편한 침대차에서 자고있었다는 것부터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얘기다.
의혹은 자연 지난 4월에 있었던 금산지구의 신민당 공천 입후보자 양상석씨 변사사건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때에도 단순한 자살이라는 판정으로 사건은 흐지부지 끝장났다. 어쩌면 이때 누구에게나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구멍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이번 사건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양씨의 죽음이 자살이었다 치더라도 적어도 그를 자살로 몰아넣은 동기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만은 일반이 납득할 만한 해명은 있어야했다.
국가의 책임이란 여기에까지 미쳐야 옳은 일이다.
이번 사건도 또 흐지부지 단순한 사고 사로 끝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의혹을 국민이 풀 수 있게 만들어야 비로소 사건은 종결될 것이며 국가도 그 책임을 다하게 될 것이다.
어느 국가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잘못된 일에 대한 도의적 복원력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게 없을 때, 국가는 그 존재 이유마저 잃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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