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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제13화>방송 50년(4)|이덕근(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27년에 생긴 경성 방송국은 l933년까지 5년 동안 일본어 단일 방송을 하다가 33년4월26일에 소위 이중 방송의 실시로 한국어 방송과 일본어 방송이 각각 독립했다.
단일 방송 개국 초에 참가한 한국인은 이옥경씨 등 몇 사람이었다가 1930년께 김영팔씨가 아나운서로 들어왔고 이혜구씨가 편성부에서 일하는 등 수가 적었지만 차차 한국인의 등장이 눈에 띄기 시작하여 이중 방송의 진용이 모두 한국인으로 짜였다.
일본어 방송을 제1방송과, 한국어 방송을 제2방송과로 불렀는데 제2방송 과장에는 윤백남씨가 취임했다.
윤씨는 경성 방송국이 생기기 전에는 금융 기관에 근무한 일이 있었고 영화 제작에도 손을 대고 방송국이 생기자 고담 방송을 맡아 자주 출연해 오다가 제2방송이 생기자 과장으로 취임했다. 문단에도 막 두각을 나타내던 때였다.
윤백남 과장 밑에 「프로그램」편성에는 이혜구씨(서울대 음대 학장)와 이하윤씨(서울대 사대 교수)가 있었다. 이씨는 경성 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분이었는데 비올라를 잘 다뤄 명수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씨는 음악·어린이 시간 등 연예「프로」를 맡았다.
이하윤씨는 당시의 중앙일보의 기자로 있다가 왔는데 외국 문학 소개·강연·라디오 학교 등 교양 「프로」를 담당했다.
이 두 분이 방송 사장 최초의「프로듀서」가 되는 셈이다.
이때는 이옥경씨는 방송국을 떠났고 아나운서로 법전 출신의 박충근씨·남정준씨가 새로 입사했다.
함경도의 경성 사람으로 「파리」대학 출신의 멋장이 신사 이정섭씨도 이때 있었다. 이씨는 기획과에 있었는데 입버릇처럼 『프랑스의 방송은…』하며 모든 것을 외국의 시설·기술·제도와 비교하다보니 일본 사람들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해박한 지식으로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이분은 6·25 때 납북되었다.
김진섭씨도 이때 있었다. 『생활인의 철학』이란 저서로 유명한 김진섭씨는 키가 크고 준수한 표정에 말이 없는 사람으로 하루 종일 프로그램만 짜고 있었다. 이하윤씨는 35년9월에 들어가 35년8월에 방송국을 사임했는데 후임으로 시인인 안서 김억씨가 들어갔다. 아나운서에는 박충근·남정준·김준호·이석훈, 그리고 여자 아나운서로 경성 여고를 나온 최아지씨, 숙명여고를 나온 김문경씨가 있었다.
초대 제2방송 과장이 된 윤일남씨는 원만한 호인이었다.
그러나 윤씨는 33년9월에 연극에 전념하기 위해 방송국을 떠나 버리고 제2대 방송 과장에는 김정섭씨가 들어갔다.
그는 처음 교섭 받기는 제2방송 과장이었는데 이중 방송이 실시될 때까지 일본인들이 사령장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작 제2방송과가 생기자 윤씨는 부장 대신 과장으로 발령이 나와 버렸다. 일본인 이사장이 변덕을 부린 모양이었으나 윤씨는 아무 말도 않고 우리말 방송 키우기에 열중했다. 윤씨는 부하 잘못으로 일본인 상사로부터 욕을 들어도 부하 직원에게는 욕먹은 티를 보이지 않았다. 방송이 처음 생길 때부터 방송국 안에는 방송을 감시하는 기구가 있었다.
체신국 감리 과장·감독 계장·총독부 경무국의 보안 과장·도서 과장·사회 과장·해군무관·사단무관·경성일보 사장으로 구성된 방송 심의회가 있어 방송은 사전 검열되었고 이 사전 검열한 것이 제대로 방송되는지를 감시하는 곳으로 「감청」이란 것이 있었다.
이 감청 업무는 제2방송과가 생기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 감청 직원은 방송국 안에서 방송을 듣고 있다가 검열에서 삭제된 부분을 연사가 그대로 말한다든가 사전 검열된 내용과 다른 것이 방송되면 즉시 방송 중지의 벨을 누르게 되어있었다.
방송 초창기 때는 방송국의 간부들이 모두 일본 사람들이어서 검열에서 지워진 어귀라도 연사나 아나운서가 슬쩍 읽어버리면 알지 못했다.
간부들은 연사의·억양·음색 등으로 잘되고 안 되고를 판단할 뿐이었으나 차츰 한국어 방송이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자 일본인 감독자들이 우리말의 뜻을 차차 알게 되어 속이기 어렵게 되어갔다. 이때의 삭제 대상은 독립 운동 같은 반일 운동에 관한 것이 주 대상이지만 사회 풍기에 대한 것도 많았다.
이하윤씨는 서양의 시·연극 등을 주로 번역했는데 대본에 있던 키스란 말이 감청 직원에게 걸린 일이 있었다.
키스에는 남녀 사람의 키스, 부모가 아기들에게 주는 애정의 키스 등 구분이 다양하지만 일본인들은 이런 내용에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커다란」(?) 위반 사항을 적발한 고등계 형사 출신의 감청 직원은 『키스란 말이 무엇인데 그러느냐?』는 반문에 대해 『그것은 남녀가 한 이불 속에서 입을 빠는 것이지 뭡니까. 따라서 풍기를 문란케 할 우려가 있는 것이오』라는 이유를 거침없이 내놓았던 것이다.(이혜구씨의 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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