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직업 의식|김영정 <이대대학원장·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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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먼·파워」라는 말이나 개념에 동조하건 안 하건 간에 많은 여성들이 직업을 통하여 사회 진출을 하고 있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작년도의 집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 여성들의 취업 인구는 3백60만명 가량이며 이는 총 노동 인구의 3분의1을 훨씬 넘는 놀라운 숫자다.
이들의 대부분이 아직 농업이나 기타 저임금·저 기능의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의 취업 욕망은 점차 높아가며 취업의 종목과 분야도 날로 넓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근래에 와서 산업 발전과 아울러 여성들의 사회 문제에 대한 각성이나 정치 의식 등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음에 비하여 직업에 임하는 여성들의 의식에는 아직 이렇다할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우리들의 의식 구조에는 오랜 세월을 두고 스며든 사회적 「터부」와 함께 스스로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위축감이 뿌리깊게 도사리고 있다. 대부분의 미혼 여성들은 교육의 다소를 막론하고 직장이란 어느 기간동안 머무르다가 가는 휴식처로 생각한다.
이러한 심심풀이 혹은 과도적 취업 자세 때문에 임금의 차별, 불시의 해고 등 여러 가지 불공평한 대우를 자초하게 된다.
직업 의식에 관한 한 기혼 여성들도 별다른 것이 없다. 해를 거듭함에 따라 일에 타성이 생기고 창의력마저 메말라 버린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책임 있는 자리나 일거리가 맡겨지지 않고 승진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경우에 따라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는 예도 없지 않다.
어쨌든 오늘의 직장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벽을 쌓아두지 않는다. 오히려 현명한 남성들은 한 여성이 직장에 진출했을 때 그를 『한사람의 여자로 보기보다는 동등한 사회인으로 또는 동료로 보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이미 소련에서는 의사의 70%가 여성이며 공장 기술자와 「엔지니어」직에도 많은 수의 여성이 진출하고 있다.
오랫동안 여성이 제2의 성으로서 장식적 존재였던 서구 사회에서도 차차 여성들의 사법계 혹은 관리직 진출이 늘어나고 있음을 본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자라고 다른 점이 있나요?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한 여자라 해서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진 않습니다. 오직 실력이 문제지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자하는 만큼의 사람이 되게 마련이다. 만약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라고 굳이 스스로의 존재를 위축시키는 여성이 있다면 그는 또 그 자신이 바라는 그런 여자가 되면 그 뿐이다.
여성들의 직장 진출이 눈부시게 늘어나고 있는 이때 명실공히 철저한 직업 의식을 가지고 다부지게 일해 나가는 자세는 이미 우리 앞에 닥쳐온 시대적 요청이다. 가정에서는 어머니와 주부의 역할을, 그리고 직장에서는 의욕을 가지고 직무에 임하는 생활 태도-이것은 분명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직업 여성은 안일의 유혹보다도 일의 도전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는 개발된 직업 의식을 가지고 자기 능력대로 공헌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자기 완성의 충족감을 깊게 체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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