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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과 몸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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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구의 자전을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한 학자가 물었다.
『전세계의 석유 보링(채굴)을 지금 당장 올·스톱하면 된다.』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이 모인 한 국제회의 석상에서 있었던 풍자이다.
사실 석유 에너지의 공급을 완전히 정지한다면 지구의 자전을 멈추는 이상의 효과가 파급될 것 같다. 우선 전세계의 경제활동이 전부 마비될 것이다.
그러면 해가 뜨고 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 지구의 자전에 의해서 일출·일몰이 생기며, 적어도 일출의 동안은 인간의 경제활동이 맹렬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는 예외 없이 석유를 지배하는 나라이다. 하이옥탄가의 개설린은 하늘을, 중유는 바다를, 그리고 개설린과 등유는 지상을 지배한다. 저 알래스카의 석유 한방울이 강원도 심산유곡 어느 오두막의 밤을 밝혀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그 위력(?)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석유를 통해서 얻어지는 부가 경제적인 의미로 보면 온갖 것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작년 5월의 일이다. 아라비아 반도를 횡단하는 파이프·라인이 시리아의 불도저에 의해 파괴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 일로 무려 9개월간 세계의 경제는 독감을 치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수상 클레망소는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었겠는가. 『석유 한방울은 우리의 피(혈) 한방울이다.』
바로 제2차 대전 때 일본은 그 말을 전시 표어로 옮겨 놓았었다. 전봇대마다, 전차나 자동차마다 『석유 한방울, 피 한방울』이라는 광고를 붙여 농은 것이다.
세계의 석유소비량은 그 지배력을 과시라도 하듯이 10년 단위로 2배씩 늘어나고 있다. 60년도의 전세계 1일 소비량은 2백6만t이었다. 그러나 70년엔 6백6만t으로, 이제 다가올 80년엔 무려 1천1백59만t을 추정하고 있다. 자유세계가 70년대에 석유개발에 투자할 비용은 약3천6백50억 달러라고 한다. 24시간에 1억 달러씩 쓰는 셈이다.
우리 나라도 경제성장과 함께 석유소비량이 상승일로에 있다.
65년도에 1백53만㎘이던 것이 69년도엔 6백54만㎘로 늘어났다.
이젠 아라비아의 미열이 우리 나라에선 몸살로 번져오는 형편이 되었다. 최근 석유가 인상으로 인한 코스트·푸쉬가 모든 물가를 들먹이게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차라리 들기름 시대가 그립다고나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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