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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 앞에서 을사늑약을 맺은 중명전을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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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가을 하늘이 시리도록 맑은 계절이다. 특히 덕수궁 돌담길에서 보는 한국의 가을은 가히 명품이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덕수궁 중명전에서 만나자는 문자가 왔다. 한국의 가을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현장을 보고 싶어 하는 재일동포가 있는데 그와 함께 둘러보자는 제안이었다. 1897년 들어선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은 덕수궁 안이 아닌 돌담 뒤편, 정동길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작은 골목 안에 있다.

 빨간색 벽돌로 지은 이 건물은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 1시 치욕의 을사늑약이 불법적·강제적으로 이뤄진 장소다(체결 일자는 17일). 당시 이곳에 머물던 고종 황제와 대신들을 일제가 군대를 동원해 협박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뺏고 통감부를 설치해 보호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뒤 1907년 고종은 이곳에서 밀지를 내려 헤이그 만국평화회담에 밀사들을 파견했다. 고종의 숨결이 살아 있고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역사적 장소다. 당시엔 덕수궁 뒤편에 있었지만 그 뒤 일제에 의해 궁이 분할·축소되면서 따로 떨어지게 됐다고 한다. 여러모로 국권 상실의 상징이다.

 문제는 역사의 현장을 다루는 허술함이었다. 길 어귀에 나무에 가린 ‘중명전’이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을사늑약의 현장’이라는 안내는 보이지 않았다. 정문에 와서야 작은 설명문에 보일 뿐이었다. 중명전을 돌아보는데 마침 문화유산 답사에 나선 단체 방문객이 들어왔다. 안내인의 설명에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탄식을 하는 이도 있었다. “내가 이 앞의 맛집엔 수십 번도 더 왔지만 바로 여기에 중명전이란 곳이 있고, 이곳에서 을사늑약이 강제로 이뤄진 건 몰랐어.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으니.” “‘외교권을 상실한 을사조약 1905년’ ‘나라 잃은 경술국치 1910년’” 식으로 수학공식 배우듯 역사를 배웠으니 원.”

 어디 그뿐인가. 문화재청 사이트에 들어가 ‘중명전’을 쳐봐도 별 차이가 없었다. 건물 전체가 흰색으로 칠해진 ‘시대 불명’의 중명전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중명전에 대한 상세문의는 덕수궁관리소(02-771-9952)로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가 생뚱맞았다.

 지금 한국사 교육을 놓고 갑론을박이 대단하다. 수능 필수과목으로 하는 것부터 교과서 편향성까지 줄줄이 논쟁이다. 하지만 중·고교에서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들고 입시교육을 하는 것만 한국사 교육은 아닐 것이다. 정작 국민에게 우리 역사를 생생히 가르쳐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운다는 한국사 교육의 원래 목적은 뒷전으로 밀린 기분이다. 바로 우리 곁의 역사 흔적부터 살피는, 전 국민을 위한 살아 있는 한국사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우리 동네의 역사 흔적부터 살펴봐야겠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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