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의 탄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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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과거의 조선사람은 중국연구를 학문으로 생각하여 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연구취미를 조금도 못가졌다.』
이 말은 구한국 말엽 우리나라에 교관으로 있던 「다까하시」(고교)라는 일인학자가 쓴 『이조불교사』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한국학자들의 맹점을 점잖게 찌른 말이다.
그의 말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슴을 누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편견」 때문일까. 그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일까. 되새겨 볼만한 말이다.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우리의 선인들은 그러한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겠다. 그의 말이 전연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대주의적 풍조는 아주 뿌리 깊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으로부터 7백여년 전에 『삼국사기』를 엮은 김부식에 의하면 고려의 제17대 임금 인종은 『지금 학사 장부들은 모두 오경과 제자백가의 책과 진나라나 한나라의 역대 사서에는 혹 널리 통하여 상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도리어 우리나라의 사실에 대해서는 망연하여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심히 통탄할 일』이라고 언제나 탄식하였다고 한다.
이 부끄러운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과거를 똑똑히 기억하여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의 전철을 다시 밟게 마련이다. 자기지가 없는 곳에 주체성이 있을 수 없다. 자기 지는 역사의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사의식이 없으면 진정한 소속감도 자기확신도 있을 수가 없다. 듣자니 2천년의 망국의 비운을 박차고 일어선 「유대」민족은 2천5백년전에 이미 사어가 된 「히브리」말을 다시 찾아내서 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 「유대」민족의 지닌 힘과 누리는 번영은 우연의 소산은 아니다. 부조들의 종교적 유산을 중심으로 그들은 한덩어리로 뭉쳐 난국을 헤쳐나가고 있는데서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현상이 많다. 창가학회니 천리교니 하는 왜색 유사종교에 넋을 잃고 동방요배를 자행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무리들. 유행에 얼이 빠져 원숭이처럼 남의 흉내 내기에 골몰하는 거리의 군상들. 오늘도 사대주의를 일삼는 「유식한」 무식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사람들을 한데 묶어 주는 것은 그들의 문학이다. 즉 그들이 가진 공통의 관념과 표준들이다. 문학 전통에서 단절한 사람은 줄기에서 떨어진 포도나무가지처럼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학의 운동은 학문적 자각이요 성숙으로서 그 귀추가 크게 주목된다. 인종임금도 이제 지하에서 편히 쉬실 것인지. 문상희<연세대교수·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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