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8) 현장 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황금을 낚는 참치 잡이|아비잔 (아이버리코스트) 홍사덕 순회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아주>(3) 남위 16도21분. 동경 1도7분. 「나폴레옹」이 최후를 맞았던 「세인트헬레나」도에서 정동방으로 7백km 해상. 바다와 하늘이 칠흑속에 엉겨붙은, 잔뜩 찌푸린 날씨이다. 갑자기 선원들의 발걸음이 부산해졌다. 「카나리아」도 「라스팔마스」기지를 떠난지 꼭 14일만에 첫 조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새벽 3시20분. 초속 30m의 바람을 등에 지고 전속 남진. 동시에 아름이 넘는 주낙 뭉치가 연줄 풀리 듯 바닷 속으로 빨려든다. 8m를 넘는 파도가 선체를 후려친다. 그때마다 소나기 퍼붓듯 물방울이 튕겨 내린다.
먹물을 부은 듯한 바다는 끊임없이 깊은 호흡으로 으르렁거린다. 그리고 기관실의 숨가쁜 소음은 마치 그것에 맞서기나 하듯 헐떡인다. 원양의 뱃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장엄한 대결-. 온누리가 무명의 어두움에 휩싸인 속에서 단 한 점의 불빛을 의지 삼아 이에 빨려들기를 거부하는 멋에 넘친 대결이 계속 된다.
『10분에 백더어-』
파도와 「엔진」이 소음의 단조로운 「하머니」를 문득 박전규 선장 (38·전남 추자도」의 쇳소리가 깨뜨린다. 이어 선원들의 복창. 낚시의 반짝거리는 「리듬」이 한층 빨라진다. 바닷물에 흠씬 젖은 얼굴들. 청동의 조상처럼 어기 차다.
아침 8시20분 다섯시간만에 주낙줄을 풀어놓는 작업은 끝났다. 그동안 풀려나간 길이는 대충 잡아 90km. 서울서 천안까지를 낙싯줄로 이어놓은 폭이다.
여전히 찌푸린 날씨. 수평선은 짙은 검회색으로 녹아 붙었다. 6백20톤의 선체가 크게 우회전. 낙시를 거둘 때까지는 아직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8시40분. 10명씩 3개조로 나누어 아침 식사 개시. 「브라질」쌀로 지은 밥에 반찬은 통조림 김치와 돼지찌개. 바닷고기는 얼마든지 있지만 작업하는 날은 절대 밥상에 올리지 않는다고 15분이 채 안 지나서 3조 모두 식사 완료. 통신사와 기관사 몇 명을 빼고는 모두 좌현 쪽으로 몰려 선다. 주낙줄을 거둬들일 준비가 시작되고 시간이 다가올수록 구릿빛 얼굴은 점점 상기된다.
박 선장이 갑판 위에 선다. 손에 든 빈「파이프」를 입에 무는 것이 작업 개시의 신호. 금연가의 손에 들린 이 「파이프」는 15년 전 그가 뱃사람이 되던 때부터의 「마스코트」이다.
상오 10시5분. 여정규씨 (32·충무)의 눈길이 「파이프」에 붙박힌다. 모두 정 위치 완료. 기도와 같은 침묵이 계속된다.
『개시-』
「파이프」가 입으로 간 것과 여씨의 환호를 닯은 외침은 거의 동시였다. 뱃머리의 도르래가 둔탁한 삐져거림을 내고 납빛 바닷속에서 주낙줄이 팽팽한 직선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알바코」다아-』
송숙진씨 (39·통영)의 뛸 듯한 외침에 이어 『와-』하는 함성. 참치 중에서 제일 값나가는 놈이 첫 번째로 올라온 것이다. 박 선장의 「파이프」가 다시 손으로 옮겨지고 구릿빛 얼굴에 하얀 이가 드러났다.
바람은 수그러졌지만 하늘은 여전히 잿빛. 그 잿빛의 공간에서도 참치의 뱃바닥은 푸른 기를 발한다. 무릎 높이까지 펄떡이는 놈들 위에 얼음덩이가 쏟아지고 기진 해지기를 기다릴 틈도 없이 그대로 창고 행.
정확한 율동으로 진행되던 작업이 갑자기 「템포」를 잃었다. 중키의 어른 만한 상아가 걸려 든 것. 도르래와 힘 다루기라도 하듯 물보라를 일으키며 몸부림치고 주낙줄은 금방이라도 끊겨질듯 팽팽해진다. 도르래의 삐꺽거림이 정지되고 직선을 그었던 주낙줄이 잠시 느슨해졌다.
『이런 때는 사전 공작이 좀 필요하죠.』 조규환 갑판장 (35·부산)과 김성배씨 (32·목포) 가 쇠갈퀴와 몽둥이를 잡고 나타나자 도르래는 「다시」움직인다.
상어와의 난타전은 그저 1분쯤.
뱃바닥에 놓였을 때는 잠투정하듯 이따금씩 경련 할뿐이었다. 요리사 박수진 영감 (52·울산)의 손이 마치 마술사의 준비 동작처럼 몇 차례 왔다갔다하자 상어는 다시 바닷 속으로 던져졌다. 박씨가 잘라낸 것은 두자 길이의 지느러미. 중국 요리에서는 최고급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10「달러」는 받겠재….』 시종 싱글거리던 박 노인이 누구에게라는 것도 없이 말을 건넨다. 그러나 어부들은 이미 연달아 올라오는 참치 eP를 처리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하오 1시20분. 작업은 완전히 끝났다. 총 어획량 5·5망. 줄잡아 3천 「달러」어치이다. 불과 10시간 남짓 사이에 30명 선원이 골고루 30만원씩 돌아가는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