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마티스 … 그들을 움직인 생명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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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프리카 푸누족이 각종 의례와 장례식에 사용한 여성 가면. 도톰한 입술과 높은 아치 모양의 눈썹, 옆으로 긴 눈 등은 당시 미인상을 보여준다. >> 동영상은 joongang.co.kr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얼굴은 탈을 뒤집어 쓴 듯 기괴하다. 피카소가 주도한 ‘큐비즘(cubism)’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당시 유럽 예술계를 들썩이게 했던 원시 아프리카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민지로부터 상륙한 아프리카 예술의 원시적인 조형성과 에너지는 피카소를 비롯해 조르주 브라크·앙리 마티스 등 당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2일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콩고강-중앙아프리카의 예술’은 현대미술에 독특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아프리카 예술의 역동성을 소개하는 자리다.

콩고강 유역 15개 부족 유물 71점 나와

 콩고강은 적도를 따라 대륙을 관통하는 4700㎞의 강으로 아프리카에서 나일강 다음으로 길다. 3000여 년 전 서아프리카에 살던 농경민인 반투족이 강가에 터전을 잡으면서 물길을 따라 풍요로운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콩고강 인근 15개 부족의 생활상이 깃든 유물 71점이 나온다.

 전시품의 대부분은 조각상과 가면이다. 콩고강 전역에서 확인되는 심장 모양의 가면은 주로 나무나 상아를 이용해 만들었다. 영양의 둥근 뿔을 형상화한 쿠엘레족의 가면은 의례용이었다. 사냥 실적이 영 좋지 않거나, 전염병이 돌 때면 부족들이 가면을 쓰고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아프리카 부족들에게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행위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부족 공동체의 통합과 악령 퇴치를 위한 의식이었다.

가면은 의례용 … 제사 지낼 때 사용

여성이 좌석을 떠받치고 있는 형태의 의자. 배꼽 둘레에 새겨진 문신은 다산을 상징한다.

 중앙아프리카 사람들은 조상의 신비로운 힘과 권위가 자손들을 보살핀다고 믿었다. 선조의 뼈를 유골함에 보관한 후 주위에 사람 모양의 조각상을 세워 유골을 지키게 했다. 콩고족이 마을 입구에 세웠던 나무 조각 은키시 은콘디(Nkisi Nkondi)는 한국 시골 마을 입구의 장승처럼 공동체를 악한 기운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전시에 나오는 코타족의 유골함 수호자상, 테케족 남성상 등은 독특한 표정과 섬세한 장식으로 높은 예술성을 보여준다.

 적도 남쪽 사바나에서는 여성을 형상화한 조각이나 가면이 많이 만들어졌다. 전시를 기획한 양성혁 학예사는 “사바나 지역의 많은 부족집단이 모계 사회였다. 생명을 양육하는 여성을 숭배한 데는 농업의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케브랑리 박물관 소장품

 전시에 나온 유물은 아프리카 현지에서 온 것이 아니다. 모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민속박물관 케브랑리 소장품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유럽인이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수집한 작품으로 제국주의 역사의 흔적을 보여준다.

 케브랑리 박물관의 스테판 마텡 관장은 21일 전시 개막식에 참석해 “세계 최고의 조각품은 아프리카에서 나왔다. 아프리카 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전시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예술을 세계에 소개한 것이 유럽이라면, 아프리카의 문화의 생명력을 말살한 것도 유럽이었다. 에이마 비에리(eyma bieri)라고 불리는 유골함 조각상은 중앙 아프리카 팡족의 전통 예술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 초 기독교 개종 열풍과 프랑스 식민 정부의 에이마 비에리 사용 금지 조치에 의해 조각상 제작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전시는 내년 1월 19일까지. 무료. 02-2077-9000.

이영희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오늘부터 '중앙아프리카의 예술'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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