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연포탕·노래방 … 시는 세상과의 연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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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이 새 시집을 엮는 동안 달라진 것은 결혼을 한 것이다. 아내(양윤의 문학평론가)는 그의 첫 번째 독자다. 시인은 ‘조마루감자탕집에서’라는 시에서 ‘화탕지옥이야, 마누라만 아니면 여기 안 있어 / 아내는 먼 데서도 그대를 지탱해준다’고 고백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제는 ‘마징가’가 아닌 ‘미스터 순대’다.

 시인 권혁웅(46)은 두 번째 시집 『마징가 계보학』(2005) 때문에 오랫동안 ‘마오빠(마징가 오빠)’로 통했다. 이제 그는 다섯 번째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로 좀 더 사람 냄새 나는 시인으로 변모하려 한다. 김이 펄펄 나는 ‘순대시집’에서 풍자의 날을 접어두고 일상의 노래에 몸을 맡겼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아버지, 나뭇잎처럼 뒤척이는 어머니, 치매 예방을 위해 고스톱 치는 고모가 시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난해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봄밤’도 술에 취해 천변에서 노숙하는 시인의 얼굴이다.

2012 미당문학상 수상작 등 실어

 18일 만난 권씨는 “지배받고 속지만 또 투표하는 선량한 이들의 삶과 사랑을 채집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득 그의 시어를 빌려 그의 삶을 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애의 길고 구부정한 구절양장’(‘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이라 했다. 연애가 다 그런 건가.

 “그렇지 않을까. 예전 애인에게 헤어지자고 한 날, 그 친구가 울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더라. 이상하게 그 모습이 변비 같았다. 몸 안에 울음통이 있는데 울음이 토막 난 순대처럼 끊겨서 나오는 거다. 사실 그게 내 마음이기도 하다. 아내랑 연애할 때는 내가 변비처럼 울었던 적도 있었다.”

 -오연경 평론가는 ‘연애의 욕망’이 권혁웅의 시를 추동한다고 했다.

 “세상과의 연애를 뜻하는 거니까 동의한다. 연애 감정을 느끼는 경우에 시를 쓰게 된다. 제일 관심 없는 사람이 증권사 애널리스트, 회계사 같은 분이다. 친한 사람들이 가난 한 경우가 많다. ‘연애시’ 역시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못 쓰겠다. 이번 시집에서 순대국이랑 연포탕 먹은 이야기는 다 실화다.”

 -‘와우, 어디서 좀 놀았군요’(‘금영노래방에서 두 시간’)

 “교회 오빠라 여자를 멀리했다. 대학 가선 그때를 후회하며 피하지 않았다.”(웃음)

 -이번 시집에 가족이 많이 나온다. ‘그토록 멀리 흘러와서야 나는 아버지를 흉내낼 수 있지’(‘시원하다는 말의 뒤편’)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한이 많았다. 사업에 자주 실패했고, 어머니가 화장품 외판을 하며 4남매를 키웠다. 나는 굉장히 양면적이다. 어머니는 노동자 천사, 아버지는 무능하고 못된 어르신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닮고 싶었다. 그런데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체질은 아버지를 닮더라.”

 -실제 생활에서도 ‘소주병의 푸른빛이 비상구로 보이는가.’(‘포장마차는 나 때문에’)

 “알면서.”

 -‘세상의 모든 아들들, 욱하고 가출하고/택배를 가장해서 집으로 전화를 건다’(‘호랑이가 온다2’) 어떤 아들이었나.

 “늘 가출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못했다. 마음 속엔 태풍이 쳤다. 고1까지 부모님이랑 한 방을 썼는데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노트로 탈출했다. 갑자기 방언처럼 시가 터졌다. 지금 보면 죽은 생각이지만 이런 걸 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시 때문에 구원받은 거다.”

탈출의 욕구, 쓰는 것으로 풀었다

 -‘이불을 들추면 운명이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운명의 힘’)고 했다. 시가 운명인가.

 “나는 쓰기 중독이다. 이 책을 내고 나면 다음엔 뭘 쓰지 불안하다. 그래서 글쓰기가 운명인 것 같다. 밀란 쿤데라는 ‘진짜 인간이 가진 불멸은 자기 이름을 가진 책을 남기는 것‘이라 했다. 순대국집은 변하겠지만 그 안에서 이별을 통고받고 밤새 우는 사람은 계속 있을 테니까. 그들이 내 시로 위로받으면 좋겠다. 그들이 있는 한 불멸인 거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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