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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내빈으로 끝난 사이버스페이스총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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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원엽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정보통신방송서밋에는 12개국 장·차관 등 35명의 국내외 연사가 참여했다. 17일에 끝난 대구 세계에너지총회엔 42개국 54명의 고위급 인사와 셸·도쿄전력 등 글로벌 기업 CEO 등 275명이 참여했다. 지난 18일 막을 내린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에는 이보다 더 많은 1600여 명이 참석했다. 87개국 정부 대표와 18개 국제기구, 기업·학계 인사 등 말 그대로 박근혜정부 출범 후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였다.

 폐막식이 있었던 18일 저녁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내외신 합동기자회견을 했다. 윤 장관은 “서울 프레임워크는 총회 참가국들이 수용한 최소한의 공통분모라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며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정리하고 향후 논의 방향을 제시한 최초의 종합문서가 나왔다”고 총회의 성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장관의 말을 듣는 기자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150석 남짓한 프레스룸도 3분의 1 이상이 빈자리였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개회 축사 때만 반짝 주목을 받았을 뿐 1박2일 행사 기간 내내 프레스룸 절반 이상은 비어 있었다. 이명박정부가 유치한 행사다 보니 새 정부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돌았고 각국도 장관급 인사 대신 차관으로 급을 낮춰 보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브리핑 때 행사 관계자들이 빈 기자석을 채우곤 했다. 외교부 공보실 관계자는 총회 폐막 후 “외신에서 한 곳도 행사를 보도하지 않았다”며 울상을 지었다.

 물론 사이버스페이스총회의 역사가 짧고 사이버 공간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가 이제 초기 단계라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지도층 인사들이 한데 모인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엇보다 이번 총회야말로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이 주도적으로 소프트 파워를 내보일 수 있는 무대였다. 사이버 이슈야말로 발전 정도가 다른 개도국과 선진국 간, 이해관계가 다른 영·미와 중·러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소프트 파워를 키울 절호의 기회였다. 이 기회를 잘 살렸다면 중견국 외교와 소프트 파워를 강조하고 있는 한국 외교가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귀빈이 오는지, 얼마나 화려하게 행사를 치렀는지로 성공 여부를 재단하던 시대는 지났다. 중요한 건 행사의 규모가 아니라 내실 있는 성과와 이어지는 후속 조치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야말로 국제행사 때 경계해야 할 적이다.

정원엽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