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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의 거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급료도 못 받고 오히려 매만 맞았습니다. 억울해서 못살겠습니다.』
이런 유서를 부모에게 남겨놓고 15세의 어린 직공이 음독 자살했다.
소년직공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범인은 바로 4천2백원의 월급임에 틀림없다. 삭월세와 밥값, 그리고 교통비를 떼고 나면 속옷 사 입을 여유도 없었다.
휴일도 없이 철야작업을 밥먹듯 하던 노동의 보상이었다. 최저 생활비가 아니라 최저 생존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그 동안 견딜 수 있던 것은 언젠가는 피어날 때가 있겠거니 하는 일루의 희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또 그 혼자만 혹사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68년도에 노동청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제조업 종사자의 시간당 임금이 미국은 2「달러」61「센트」「필리핀」이 20「센트」인데 비겨 한국은 겨우 9「센트」였다. 그 뒤 우리네 임금도 명목상 상당히 늘어났다지만 실질 임금은 거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런 속에서 용케도 임금노동자들이 살아나간다는게 사실은 기적 같은 얘기다. 그러나 장군을 죽음에 몰아넣은 범인은 또 있다.『하나의 자살 행위에도 여러 개의 원인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눈에 뛴다고 해서 그것이 가장 유력한 원인이 되는 법은 없다…. 신문은 흔히「내심의 고민」이니「불치의 병」등을 들춰낸다. 이런 설명도 그럴 듯 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당일 절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한 친구가 쌀쌀스럽게 굴지는 않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이 친구야말로 하수인인 것이다.』「카뮈」는 이렇게 『「시지푸스」의 신화』에서 말한 적이 있다고 사람이 반성과 숙여 끝에 자살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그것은 거의 충동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충동에 불을 질러 놓는 것은 흔히 잘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다.
사람은 가난으로만 자살하지는 않는다. 특히 장군의 경우, 그런 느낌이 짙다. 풍요한 미국대학생사이에서도 자살율은 병으로 인한 사망률보다는 낮지만 자동차 사고로 인한 것보다는 많아, 제2위를 차지한다. 소년들의 자살율은 전체소년 사망률 중 제3위이다.
이들과 장군의 생활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완전히 자기네가 버림받고 있다는 고독감만은 공통적인 것 같다. 급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한다해서 주인이 매질을 하지만 않았더라면 혹은 장군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매 맞고 쫓겨 나는 장군을 보는 동료 직공들의 눈초리가 조금만 더 동정적이었어도 그는 그처럼 절박감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신록이 우거진 이 화창한 날씨의 거리가 그에게 그처럼 비정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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