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 동부지구의 '미스테리'

중앙일보

입력

'버뮤다 삼각지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유독 한 디비전에만 트레이드가 집중되고 그 트레이드의 내면을 살펴봐도 의문덩어리 그 자체다.

그 디비전은 바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플로리다 마린스, 뉴욕 메츠, 이 다섯 구단으로 구성된다.

2002 시즌 지구 1위는 10시즌 연속 디비전 챔피언을 차지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지구 2위인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게임차가 무려 19게임차가 나고 최하위인 뉴욕 메츠와의 게임차는 26.5게임차가 난다. 하지만 지구 2위인 몬트리올과 뉴욕 메츠간의 게임차는 7.5게임차에 불과하다.

지난 22일(한국시간) 뉴욕 메츠와 4년간 2600만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은 '리그 최상급 외야수' 클리프 플로이드(30)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소속의 3팀을 단기간에 거쳤다.

올 7월 플로리다 마린스를 떠난 그는 5개월 동안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거쳐 보스턴 레드삭스(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시즌을 종료한 후, 다시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어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팀과는 각별한 인연이다.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연쇄 미스테리'를 일으키는 장본인은 바로 1위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애틀란타는 같은 지구의 팀들로부터는 물론, 메이저리그의 팀들로부터 의혹스런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시즌 18승을 기록한 톰 글래빈과 케빈 밀우드를 모두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라이벌팀으로 보내버렸다는 점때문. 보편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리그 최고의 투수를 불가피하게 트레이드할 경우, 다른 리그나 디비전에 소속된 팀으로 보내는게 일반적인 섭리.

하지만, 애틀란타는 톰 글래빈은 디비전 최하위팀 뉴욕 메츠로, 케빈 밀우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보내버렸다. 게다가 밀우드는 '1할대 포수', 쟈니 에스트라다와 맞트레이드했다. 공식적인 발표상으로는 추가적인 현금 교환도 전혀 없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엽기적인 트레이드가 아닐 수 없다.

밀우드의 필라델피아 행에 대해 존 슈어홀츠 애틀란타 단장이 밝힌 사유는 '페이롤'.

하지만 이 사유만으로는 팬들을 납득시키지는 못한다.설령, 페이롤 때문에 불가피하게 밀우드를 트레이드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할지라도 아메리칸 리그의 팀으로도 충분히 이적시킬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동일 리그, 같은 디비전의 라이벌 팀으로 트레이드했다.

슈어홀츠가 행한 미스테리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글의 앞 부분에 설명한 '리그 성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올 시즌 2위인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19게임차로 디비전 10시즌 연속 챔피언에 등극한 애틀란타의 당면 과제는 바로 '11시즌 연속 챔프 등극'. 이에 방해가 안되는 전력 누수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 슈어홀츠의 스토브리그에 임하는 기본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즉, 지구 2위 몬트리올의 거센 도전만 없다면, 어느 정도의 전력누수가 생겨도 객관적인 전력이 월등히 앞서는 애틀란타에게는 디비전 챔프 등극은 별 문제될 게 없다는 것.

FA 자격을 획득한 글래빈에게 1000만달러에 밑도는 계약을 제시하며 자존심을 자극, 글래빈이 애틀란타를 떠나게 한 것도 그를 영입하려고 달려든 팀이 전혀 두렵지않은 상대, 필라델피아와 뉴욕 메츠였다는 점도 슈어홀츠가 안심할 수 있었던 이유다.(2위 팀인 몬트리올은 스몰 마켓팀으로 글래빈 영입은 재정적으로 불가능함.)

슈어홀츠는 그동안 "그렉 매덕스와 톰 글래빈 둘 다 없어도 디비전 챔프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밝혀왔었다. 그가 마이크 햄턴, 러스 오티스와 폴 버드를 사전에 영입한 이유도 그렉 매덕스와 톰 글래빈과의 FA 협상이 양측 모두 결렬될 때를 대비하기 위한 '보험용 카드'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톰 글래빈은 메츠로 떠났고 나머지 협상 파트너는 매덕스. 매덕스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는 슈어홀츠의 의중을 간파하고 애틀란타가 던진 연봉조정신청을 재빨리 받아들인 것.

매덕스의 잔류로 인해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이 여유가 생긴 슈어홀츠는 내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획득하고, 올 시즌 18승을 근거로 가파른 연봉 인상을 요구할 밀우드를 '페이롤 경감'이라는 명목으로 '1할대 포수'와 맞트레이드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왜 하필 같은 지구 라이벌인 필라델피아인가' 라는 의구심은 여전히 잔존한다. 이에 대한 해답은 밀우드가 가세한 필라델피아의 전력이 내년 시즌 애틀란타의 전력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자체 평가가 내려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몬트리올, 플로리다,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이 4팀이 전력 평준화로 인해 서로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를 벌이게 되면 객관적인 전력에서 월등히 앞서는 애틀란타는 평탄대로를 달릴 수도 있다는 노림수도 있다. 즉,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한 유형이다.

결론적으로 애틀란타의 존 슈어홀츠 단장은 내년 시즌에도 '디비전 챔프는 애틀란타의 것'이라는 거의 100% 확신 아래, 상식적으론 이해가 되지않는 일련의 트레이드를 단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글래빈과 밀우드가 아메리칸리그나 다른 디비전의 강팀으로 이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열세가 확실한 지구 라이벌팀으로 이적하는 것이 애틀란타의 2003 포스트시즌의 승승장구를 위해 크다는 판단이 내려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 스토브리그를 달군 가장 큰 미스테리는 거의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발생했다. 클리프 플로이드. 톰 글래빈, 케빈 밀우드 같은 스타급 선수들은 동부지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미스테리의 일부, 애틀란타의 '괴담'은 슈어홀츠 단장의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다.

이지우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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