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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사들 회상의 모정 화가 나희균 여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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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머니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고도 구체적인 것이다. 유년시절에 무심히 던진 어머니의 말 한마디, 어려움을 참고 살아가는 생활태도 그리고 즐거움을 구김살 없이 활짝 웃어 보이던 어머니의 모습…. 그런 것들은 한사람의 인간형성과 인생관에 조용히 스며들고 또 되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창조적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명사들을 찾아 그들이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과 도움,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일들을 들어보기로 한다.
『누구나 다 그러리라고 믿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움으로 어머니를 생각해요.』 나 여사는 어머니 배숙경 여사(70)에 대한 첫말을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조용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지만 그의 심정은 좀더 큰소리로 많은 사람 앞에서 크게 외치고 싶은 것 같이 느껴졌다.
1955년부터 58년까지 불란서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는 동안 나 여사는 「가톨릭」 수도원 기숙사에 있었다. 수녀들의 생활은 어떤 무서운 정신력으로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또 제작활동 역시 어떤 의미로는 수도자의 생활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그곳에서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런 과정은 그의 창작생활에 하나의 큰 힘과 신념을 심어주게 되었는데 그것은 평소에 어머니에게서 받은 정신생활과 봉사정신에서 영향받은 것이라고 나 여사는 말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딸(1남3녀)들이 무엇이든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도록 하셨어요 물론 아버지도 그러셨지만. 한가지 제게 대해선 무척 몸이 약한데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애처롭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나 여사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것은 경기여고 1학년 때. 그는 무척 망설이다 말을 했는데 어머니는 의외로 고모(여류화가 나혜석씨)의 소질을 닮은 모양이라고 아버지와 함께 즐거워했다.
그후 나 여사는 자신의 전공에 대해 아무런 회의 없이 그저 온 힘으로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녀공학(서울대미대)에서 남자친구들과 자유롭게 예술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어머니는 이해 있는 눈으로 지켜봐 주었다. 그리고 같은 일을 하는 남편(동양화가 안상철씨)과의 결혼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걱정했었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딸이 결혼 후에도 창작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거라고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이제 1남3녀의 어머니로 힘이 들기는 해도 제작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어머니의 그때 즐거워하던 표정에서 얻은 힘인 것 같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항상 한집에 사는 언니(영문학자 나영균씨)는 살림이나 육아 등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지만 몸이 약한 내게는 그럴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 하셔요. 그렇지만 나도 역시 어머니의 자상한 돌봄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해에 가졌던 네 번째 개인전 준비는 「아틀리에」가 없어서 친척집에서 제작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계삼을 달여 가지고 올 정도로 마음 쓰셨다면서 나 여사는 아직도 어린아이 살결처럼 희고 고운 어머니를 다정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웃었다. [서제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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