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의 전국구 후유 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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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민당은 유당수가 등록마감 직전 돌연 지역구(영등포갑)출마를 포기하고 전국구 1번후보로 등록함으로써 당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졌다.
7일 유당수가 불참한 가운데 열린 신민당의 간부회의는 유씨가 당수직과 전국구국회의원후보를 사퇴토록 결정했다. 그러나 동 당 선거대책본부장이 수습책으로 제시한 ①전국구후보의 전원사퇴 ②공천자 대회와 운영위를 소집, 선거포기여부를 결정하자는 안에 대해서는 이견이 속출했는데, 결국 총선은 치르되, 운영위를 곧 열어 체제정비를 하자는 방향으로 당론이 통합되어가고 있다고 전한다.
유씨가 무슨 이유로 영등포갑구 입후보를 돌연 포기하고 그 자신이 전국구 1번 후보로 등록했는가, 또 왜 그가 거의 독단적으로 전국구후보 인선을 해 가지고 당 간부들도 모르는 사이에 등록절차를 밟았던가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하게 아는바 없다. 그러나 유씨가 누구의 눈에도, 뚜렷한 대의 명분 없이, 그리고 전체 당원들의 여망을 어기고, 지역구 입후보를 포기했다는 것은 필시 그 배후에 어떤 흑막이 개재하고 있다는 추측을 짙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신민당 당원들이 유씨의 행동을 「매당행위」로 규정하고, 그 정계축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유씨는 권모술수에 능한 정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작년 9월 동 당 전당대회가 대통령후보로 유씨가 추천했던 인물을 지명치 아니하고, 딴 사람을 선출 지명하게 되었을 때, 마땅히 당수직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씨가 계속 당수직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정치도의상 못마땅한 일이었는데 국민은 대통령선거 및 국회의원선거를 목전에 둔 신민당으로서는 당권의 동요를 겁내, 당 지도체제의 현상유지를 꾀하려는 것이려니 하여 애써 이해를 가지러 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이번 유당수가 취한 행동은 그로 하여금 모측과 내통하여 매당·해당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을 더욱 짙게 하였고, 이제 그의 정계은퇴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는 유씨가 지역구를 포기하고 전국구를 택하는데 있어, 또 당수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여 몇몇 지역구에 유능한 인물을 배제하고 무능한 자를 입후보케 하여 모측후보의 당선을 도와주는 대가로 어떤 이득을 얻지나 않았나 하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우리사회 정치현실로 보아, 이 설의 진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흑막적인 소문이 따라다니는 사람을-야당 그것도 제1야당의 당수로 모셨다는데 한국야당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신민당은 불투명한 인상을 씻기 위해 시각을 다투어 일대 숙청공작이 있어야 하겠고, 적어도 정치를 장사의 밑천으로 삼는 정상배를 당의지도층에서 소탕해 버림은 물론, 야당 진영의 재개편을 위해 활짝 문호를 열어야 할 것이다.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둔 오늘, 신민당이 유씨 사건으로 기능마비상태에 빠지고, 회복키 어려운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지극히 불행하고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당으로서의 신민당이 그들 자신의 당내사정 때문에 다가오는 총선을 통해 국민이 걸고 있는 민주헌정에의 열망을 저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민당은 일절의 당내파벌간의 잡음을 배제하고 시각을 다투어 우선 총선에 임할 전열정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러는데 있어서는 먼저 유당수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깨끗이 그 거취를 밝혀야 할 것이며, 남은 당내지도자들은 모든 당내파문을 고루 참여시킨 가운데 잠정적으로나마 긴밀한 집단지도체계를 기능시켜야 할 것이다.
이번 파동을 몰고 오게 한 유당수 자신으로서는 물론, 그 나름대로의 말못할 사정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당의 지도자로서, 그것도 특히 제1야당의 당수로서의 투명치 않은 그의 행동이 총선을 바로 눈앞에 둔 이 시기에 있어 여러 가지 의혹을 일으킨 것은 누구의 눈에도 소소한 것인 만큼, 이게 그로서는 책임있는 지도자로서의 그 자신의 「이미지」를 살리고 또 야당전열의 이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지금은 말없이 정계를 떠나는 것만이 나라와 겨레를 위한 길이 될 것이다.
한편 이 시점에서 남은 신민당간부들 가운데 일부나마라도 당권문제를 운위하고 당내의 단결을 거부하고 있다면 이 또한 공인으로서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신민당은 지금 그와 같은 당권싸움에 정력을 낭비할 일순의 시간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신민당의 지도자들은 주류계까지도 포함한 모든 당내세력을 규합하여 오직 총선에 이기기 위한 지도체제를 조속히 발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지금 신민당은 시간을 지체해가면서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우를 범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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