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국감 증인 채택의 안과 밖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5호 31면

국정감사가 한창인 18일. 국회 인근에서 만난 야당의 3선 의원은 의외의 하소연을 했다. 당사자들의 사정을 고려해 신원을 알 만한 내용을 빼고 정리하면 대강 이렇다.

“사회지도층 인사 A씨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려 했다. 큰 비리를 저지른 데다 그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도 있어 함께 국감장에 세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같은 당 중진 B의원이 A씨를 증인에서 빼달라고 하더라. ‘대학 동문’이라는 거다. 여당 실세 C의원한테도 연락이 왔다. C의원은 A씨의 사돈 집안과 친척이다. 정의를 위해선 A를 불러야 하는데, B·C의원을 생각하면 부담이 된다. 증인을 추가로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답변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3선 의원조차 망설일 만큼 증인 명단에서 빠지려는 로비와 압박의 무게가 상당해 보여서다. 실제 B·C의원은 누구나 인정하는 실세다. 3선 의원의 ‘의기’를 응원하고 헤어졌지만 아무래도 A씨는 국감장에 서지 않게 될 듯하다.

사실 ‘능력 있는 이’들이 학연·혈연·지연을 이용해 어떻게든 국감 증인에서 빠지는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동양그룹처럼 현안이 걸려 있는 대기업 총수는 아무래도 국감 출석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개인이나 기업이라면 인맥을 총동원해 로비전을 벌인다. 국감 1~2주일 전부터 사장을 비롯한 전체 임원이 여의도로 출동해 의원들에게 통사정을 하는 곳도 있다. 마침 이번 국감에선 국회가 역대 최대 규모의 일반 증인(274명)을 불러놓고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일이 잇따라 세간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선 은밀한 로비를 통해 국감의 날 선 칼날을 피하고 “증인에서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원래 국감에서 비중 있는 증인의 한마디는 의원들의 한건주의 쇼나 호통 행진보다 여론에 미치는 반향이 크다. 14일 국회 환경노동위 국감에는 이주노동자인 캄보디아인 탄소푼(34)씨, 네팔인 우다야(41)씨가 출석해 한 달에 320시간에 달하는 살인적인 노동과 열악한 인권실태를 증언했다. 같은 날 국회 외통위 국감에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88) 할머니가, 정무위 국감에는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양금덕(84) 할머니가 각각 출석해 피해자에 대한 보상·사과에 무관심한 정부 관계자들을 일깨웠다.

국감은 이렇게 정부와 힘있는 이들을 향해 국민이 내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증인 채택은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도 의원 중 상당수는 다른 곳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다. 기업인들의 출석과 관련한 입소문이 무성한 이유다. 원칙도 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증인 명단에 넣거나 빼주는 일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과시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딱하기만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