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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환자 원격의료 허용,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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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보건복지부가 의사-환자 간에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의료 전달 체계를 망가뜨리고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란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만성질환 환자와 의료취약지역 주민의 불편함을 해소해야 한다”는 반론도 힘을 얻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의료접근성 높은 한국에 맞지 않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원격의료에 대한 논란이 시작된 건 2002년이다. 당시 의료법 개정을 통해 원격의료의 범위를 의료인 사이의 행위로 한정했다. 환자에 대한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할 경우 사이버 의료 상담 및 불법 진료가 난무하고, 진료비 급증과 부정확한 진료로 인한 의료분쟁 등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려고 하는 원격의료는 그동안 논의됐던 것보다 논란의 소지가 더 크다. 아직 의료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지 않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부분을 보면 만성질환자와 수술 후 관리가 필요한 환자 등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은 초진 환자도 포함하며, 특히 일부 환자에 대해서는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이 무한경쟁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의사와 환자의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방식으로서의 원격의료는 미국·캐나다 등 면적 대비 의사밀도가 낮은 나라나 핀란드처럼 섬이 많은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즉 의료접근성이 낮은 나라에서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토면적 대비 의사 수(의사밀도)가 ㎢당 0.98명으로 캐나다 0.01명, 노르웨이 0.06명, 미국 0.08명, 일본 0.75명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최고로 높은 수준이다. 의료접근성이 뛰어난 우리나라에서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원격의료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부는 노인 등 거동불편자와 도서벽지의 초진 환자, 만성질환자 등의 재진 환자도 원격의료 대상에 포함시키려 한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것과 도서벽지의 기준이 애매하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의료취약계층인데,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대면진료를 통한 정확한 건강 상태 확인과 적절한 투약, 관리, 교육 등이다. 원격의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의료취약계층이 의료기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체계적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에 밀착되어 있는 동네의원을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원격의료가 추진되면 의료 전달 체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현재로서는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며, 중증질환과 연구에 집중해야 할 대형병원이 원격의료를 통한 외래에 치중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될 것이다. 결국 동네의원과 지방 의료기관의 경영은 더 악화될 게 뻔하다. 의료접근성을 강화하겠다고 추진한 원격의료가 이를 더욱 악화시키는 모순을 초래하고, 의료비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악화라는 악순환을 일으킬 것이다.

 물론 의사들도 환자의 지속적 관찰(tele-monitoring), 상담·교육(tele-consultation)을 위해 정보기술(IT)을 활용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의료접근성 강화라는 명분으로 시작한 원격의료가 오히려 이를 약화시킬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원격의료 논의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혹자들은 원격의료가 허용돼야 관련 산업이 성장한다고 말하지만 원격의료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은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원격의료가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없고 건강에 대한 진단적 가치가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의 의지, 기술의 결합, 안전성과 경제성이 뒷받침되면서 의료 소비자인 국민들과 의료의 공급자인 의료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창조적인 제도를 설계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고령자·만성질환자 불편함 해소해야

이영식
한양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고령의 부모님이 3년 전 위암 수술을 받고 수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서울에 있는 병원에 내원해 진찰과 처방을 받는다는 것이다. 매번 시간을 내는 것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쇠약해지신 부모님이 진찰을 받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먼 거리를 오가게 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번거로움은 비단 노령층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점차 증가하는 청·장년층의 당뇨나 고혈압 환자들의 경우에도 정기적으로 통원해 치료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 의료 체계의 문제점들은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가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원격의료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관건은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선 화상(<756B>像)이나 대용량의 의료 정보를 빠르게 송수신할 수 있는 ICT(정보통신기술)가 전제돼야 한다. 1990년대 초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전송 속도의 문제로 중단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초고속 정보 전송기술은 대용량의 화상 정보도 끊김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장에서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다. 최근에 고감도 바이오센서와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현장에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를 이용해 혈당, 혈압 등을 측정하는 소형화된 휴대용 기기와 스마트폰 앱들이 개발, 보급되고 있기 때문에 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수용성에 관한 문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수요가 없다면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다. 고령화가 진전되고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국민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도서벽지 주민이나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원격의료 시범서비스를 실시한 결과 90% 이상이 서비스에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원격의료를 실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면진료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남은 기술적 과제들이 있다. 원격진료가 모든 질환의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제는 만성질환의 관리나 의료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 문제와 같이 국민들이 겪고 있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원격의료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계도 국민중심적 사고를 통해 진정 국민들의 의료복지 향상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부 또한 국민과 의료계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 방안 마련에 노력해야 한다. 나머지 부분은 원격의료 시스템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한 의료종사자와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의료취약지역의 주민들과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의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해소하고, 이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또 원격의료의 시행으로 얻어지는 기술 축적을 근간으로 해서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의료기술을 해외에 수출해 창조경제에도 일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국민의 시각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할 때다.

이영식 한양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