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 대한 사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잘 먹이러 들고, 잘 입히려 들고, 잘 키우려 들고, 잘 가르치려 드는게 부모다.
이런 얘기가 있다. 외동딸이 병이 위중하여 아내는 끼니를 거르며 잠을 못자는데, 남펀은 태평이다. 보다 못해서『당신은 걱정두 안되우. 잠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이렇게 따지니까 ,『왜 내가 걱정을 안 하겠소, 자 보오.』하고 뻘간 피를 배았더란다.
아버지의 사랑은 음성적이요, 어머니의 사랑은 영성적이다.
동물은 본능으로 새끼를 사랑한다지만, 사람은 마음으로 사랑한다. 이 자녀에 대한 사랑은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므로 부모가 되면 자녀를 사랑하게 뫼는 것이란다.
부모는, 특히 어머니는 거룩한 스승이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지식을 주로 가르치지만, 부모는 가정에서 인간을 만든다. 가정은 교과서 없는 학교요, 부모는 자격증만 안 가진 교사댜. 어린이는 부모와 함께 있는 동안에 배우고 부모는 일상언행으로 가르친다.
모든 부모가 대문을 나서면, 그때는 사회라는 학교의 교사가 되어, 남의 자녀까지를 가르치게 된다. .
이렇게 어설픈 교육학을 늘어놓은 까닭은 모든 부모가 가정에서의 자기 자녀에 대한 교육은 물론, 사회 교육울 담당했다는 의식과 자각을 가져야 하겠기 때문이다.
우리 어린이들이 그 제비 같은 입으로 쌍스럽고 거친 말을 예사로 하는 것은, 저희들이 지어내어 하는 것일까? 아니다. 못된 어른에게서 배운 것이다.·
우리 어린이들이 그 순진한 감정으로 저속한 유행가를 애사로 부르는 것은, 저희들이 부를 동요가 없어서인가? 아니다. 어른이 말리지 않고 손뼉을 쳐가며 재롱으로 보아 주기 때문이다.
우리 어린이들이 그 맑은 정신으로 책은 읽지 않고 만화만 보고 TV만 보는 것은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없어서인가? 아니다. 어른이 책을 마련해 주지 않고, 어른이 읽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른이 부러워 어른이 하는 대로 마라 하기를 즐긴다. 어른이 벗어 놓은 옷을 몰래 입어 보는 것도 그런 심리에서다.
「버스」에 앉은 젊은이가 노인에게는 마지못해 자리를 양보하지만, 국민학교 어린이는 본체만체다. 키가 작아 쇠줄도 못 붙잡고 이리 쓰레 저리 쓰례해도, 자리를 내 주기는 커녕 손도 잡아 주지 않는 야멸친 어른들, 딸을 대리고 탄 어머니도 자리가 있으면 제가 앉는다.
어른에게서 자리를 물려받지 못하고 자라는 어린이가, 어찌 어른이 되어 어린이나 노인에게 선뜻 자리 양보하기를 바라랴.
「아버지날」은 없고 「어머니날」만 있는 것은 어머니가 길러 주기 때문이요, 「아버지 헌장」은 없고「어머니 헌장」만 있는 것은 어린이 기르는 책임을 어머니가 지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