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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히스토리] 샬럿 호니츠 (6)

중앙일보

입력

◇ 바비 필스의 죽음

폴 실라스 감독이 부임한 이후 전력의 상승세를 가지고 온 샬럿 호니츠의 99~00시즌 전망은 밝았다.

팀의 주 공격수인 글렌 라이스가 이적을 했지만 그 보다 더 젊고 운동 능력이 뛰어난 에디 존스의 가세로 팀의 라인업은 더욱 빨라졌다. 더욱이 시즌을 앞두고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호니츠는 그 전 시즌의 비교적 준수한 성적에 비해 1라운드 3순위 지명권을 얻게 되는 행운을 차지한다.

팀은 주저 없이 UCLA 출신의 가드 배론 데이비스를 지명해 팀의 약점 중 하나였던 포인트가드 부분을 보강한다.

하지만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던 99~00시즌은 중반도 지나기 전에 팀을 충격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에디 존스의 백업 가드로 활약하며 팀에서 소금과도 같은 존재였던 바비 필스가 2000년 1월 13일 팀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당시 필스가 타고 있던 차에는 팀 동료인 엘드리지 리캐스너가 타고 있었다.

필스는 사고 현장에서 즉사했으나 그나마 다행으로 리캐스너만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리캐스너는 사고의 여파로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부상까지 입어 이후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다.(그는 99~00시즌에 겨우 7경기만을 나왔다)

더욱이 필스의 사고가 나기 얼마 전 포워드 데릭 콜맨이 음주 운전으로 경찰에 구속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팀 분위기는 이래저래 침체되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감독 폴 실라스와 팀 선수들은 잇단 악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기에서 더욱 힘을 발휘했다.

당시 NBA측은 호니츠 선수들이 필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유니폼 오른쪽 상단에 그의 현역 시절 등 번호였던 13번을 달고 경기에 나오는 것을 허락했고 결국 필스의 등번호는 호니츠의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된다.

그는 서던대학(Southern University)을 나와 199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벅스에 의해 2라운드 45순위로 지명되었다. 하지만 드래프트 직후 바로 클리블랜드 캐발리어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호니츠에선 97~98시즌부터 뛰기 시작했다.

호니츠는 부랴부랴 필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데일 일리스, 척키 브라운을 트레이드 해왔다. 또한 그들은 필스의 죽음에 대한 충격에서 빨리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 시즌보다 상승한 정규시즌 성적인 49승 33패를 기록하며 또 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진출을 막은 아이버슨

97~98시즌 호니츠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진출을 막은 이가 마이클 조던이었다면 99~00시즌에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알렌 아이버슨이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로 만난 식서스는 당시 객관적인 전력 평가 상 호니츠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이버슨의 '원 맨' 팀이라는 소리를 듣던 식서스에 비해 호니츠는 아이버슨 개인에게는 밀릴지 모르지만 훨씬 많은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어 2라운드 진출이 쉽게 점쳐졌다.

하지만 승부의 향방은 쉽게 점칠 수 없었다.

결국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식서스가 호니츠를 3승 1패로 물리치고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한다. 호니츠는 아이버슨 한 명을 막지 못해 또 다시 아쉬운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플레이오프 탈락 이후 감독인 실라스의 교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곤 했으나 팀은 계속해서 그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보내게 된다.

다가올 00~01시즌을 앞두고 있던 오프 시즌, 팀은 다시 한 번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변화의 중심에는 자유계약 선수가 되는 에디 존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 (7)편에 계속

류한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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