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결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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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27 심판은 박정희 후보가 67년 선거 때 표 차보다 약간 적게 이기는 것으로 끝날 전망이다. 이번 선거는 여러 면에서 지난 두 차례의 선거와 그의 때를 달리하는 것 같다.
여야는 어느 때보다도 정책 대결의 자세를 갖추었고 또 역대의 어느 선거보다 치열하게 분전했다.
선거다운 대결이 있을 법하던 3대 선거(56년)는 신익희씨의 별세로 싱겁게 끝났고 제3공화정에서는 63년 선거가 군정 하에서, 67년 선거는 당초부터 승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던 것. 그러나 이번 선거는 종반까지 빠듯한 싸움을 벌였다.
또 63년 선거는-인신 공격의 성격을 띤-사상논쟁·민족주의 논쟁으로 시끄러웠고 67년 선거는 일 막이 내려진 한일 협상·월남 파병이 쟁점처럼 논란되었으나 정책 논쟁이라기보다는 사후 시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앞으로 공약』을 주 쟁점으로 한 정책 논쟁이 활발했다. 부정부패 문제·예비군 문제·통일 정책 등이 모두 그러했다.
특히 선거 운동 막바지에 7대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후계자 육성과 야당의 정권인수태세 지원에 힘쓰겠다는 박 후보의 4선 불출마 선언은 심장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69년 3선 개헌이래 71년보다는 75년의 권력의 향방이 관심의 초점이었던 게 사실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집권세력뿐 아니라 정가에는 75년은 향한 많은 진동과 굽이가 있겠으나 박 후보와 이 선언으로 이 굽이는 상당히 단순해질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4·27 선거는 정당간 내지는 자연인간의 정권 교체가 오는 75년에 이루어지리란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도 높인 계기가 되었다.
이번 선거는 또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반응과 통일 안보문제에 관한 민심의 방향을 진단하는 좋은 기회였다.
박 후보는 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이러한 선거 쟁점을 소화하기 위한 체제와 시책 방향을 세워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화당 간부들에 의하면 정부·여당은 부정부패 추방을 위한 대대적인 수술계획을 짜놓고 있으며 이 방침에 따라 정부·여당의 체제 정비도 있으리라고 한다.
새 정부는 통일문제에 대해선 전향적인 방향을 세워 경제건설과 국군 현대화의 진척과 병행, 단계적으로 평화 통일공세를 적극화할 것이나 향토 예비군의 정예화와 학생 교련강화는 계속 밀고 나갈 것이 틀림없다.
박 후보는 선거 운동 기간 중 3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76년이 되면 우리의 경제력과 국방력이 북괴를 월등히 능가하게되고 김일성도 남침 야욕을 버릴 것이므로 금강산 공동개발, 판문점∼신의주 간 고속도로 합작 건설을 제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선거에서 비쳐진 국민의 통일 지향과 통일 문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앞으로 통일 문제에 대한 정부의 새로운 접근 정책을 촉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7대 대통령의 임기는 선거 쟁점의 소화와 공약 실천을 위한 강력한 「소신정치」로 특징지어질 「행정」위주의 전반기와 75년의 후단 포진 및 정계의 어떤 변혁이 있음직한 「정치적」격동의 후반기로 구분될 것 같다.
전반기는 부정부패 청소·안보태세 강화·3차 5개년 계획 추진을 위한 강력한 체제를 위해 정부·여당의 체제 개편이 예상된다. 그러나 후계자 문제는 표면에 부상하지 않을 것이다. 후계 문제가 조급히 양성화하면 강력한 「소신정치」수행에 차질이 올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집권층 일부에 강력히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후반기에는 75년 포진과 후계 문제가, 「클로즈업」이 될 것이다.
현재 박 대통령의 후계자로 유력하게 꼽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박 총재)로부터의 신임과 당의 총화 적인 지지를 받아야할 주자를 탄생시키기에는 공화당의 체질에 메워야할 골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이 시기에는 집권당뿐 아니라 야당을 포함한 정계 개편의 가능성도 논란될지 모른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은 유세 「붐」도 일으켰고 선거「이슈」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야당이 당내 분파를 지양하고 조직을 대중화한다면 선거에 이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4·27 선거가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공화당에 비해 불리한 여건에서 그 여건 차보다 적은 표 차까지 공화당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 과정이나 결과에서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된 것은 지방색의 심화. 박 후보의 출신지 영남과, 김 후보 출신지 호남의 엄청난 투표 성향은 정권과 국민의 일체감을 어떻게 살리느냐는 과제를 새 정권과, 그리고 국민에게 다시금 크게 안겨주었다.<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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