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친환경 농산물, 소비자가 믿을 수 있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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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부 친환경 농산물 인증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브로커가 서로 짜고 농약 검출 여부 등을 확인도 하지 않은 농산물에 가짜 인증마크를 찍어주다 무더기로 적발됐다. 소비자 믿음을 저버렸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가장 기가 막히는 것은 농약을 쓴 당근 10t 등 적어도 7억원 상당의 가짜 친환경 농산물이 학교 급식업체 등에 공급됐다는 사실이다. 농약을 쓴 농산물을 친환경 생산물이라며 우리 아이들에게 먹였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농가 5700여 곳이 참여한 거짓 인증 면적이 63㎢나 되고 전남 고흥의 묘지와 장흥의 주차장, 나주의 축사까지 친환경 농지로 인증하는 등 가짜 인증이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놀랍다. 특히 친환경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인증센터에서 검사 시료·결과를 조작했는데도 공무원까지 가담해 감시망에 구멍이 뚫렸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친환경 농산물 시장의 성장으로 인증 기관이 난립하면서 생긴 과도기적 사회문제로 보기엔 소비자 피해가 너무 크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금까지 매년 1회 이상 특별점검 등으로 운영 실태를 심사해 왔다며 앞으로 점검 빈도를 늘리고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정도 대책으로는 한번 잃어버린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친환경 식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어떻게 회복시키느냐에 초점을 맞춰 친환경 인증제도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농식품부는 인증 주체·과정·기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치밀하게 인증작업이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할 것이다. 소비자 참여·현장방문·감시 제도를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우선 친환경 농산물 인증 업무를 올해까지 민간에 완전히 넘기는 정부 방안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민간 이양은 큰 틀에선 바람직하겠지만 지금은 소비자 신뢰 회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친환경 농산물 인증마크를 믿지 않고 외면한다면 관련 업무의 민간 이양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