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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수첩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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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월23일은 「셰익스피어」가 탄생한지 4백7년 째 되는 날이며 동시에 3백55 주기가 되는 날이다(같은 날에 태어나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런던」연극계에서는 이날을 맞아 또 하나의 기념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있다.
이 문호가 그의 가장 창조적인 시기를 통해 무엇보다도 가까운 인연을 맺었던 「지구좌 극장」(Globe Theatre)을 재건하자는 운동이 그것이다. 「로렌스·오리비에」「폴·스코필드」등 저명한 「셰익스피어」극 배우들이 주동이 돼 벌이고 있는 이 운동은 앞으로 4, 5년 안에 「템즈」강변의 옛 자리에 이 극장을 원형대로 다시 세울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599년 「템즈」강가에 초가 지붕으로 세워져 1613년 소실되기까지 이 극장은 「셰익스피어」의 활기찬 활동 무대이자 「엘리자베드」조 영문학의 금자탑이기도 했다.
『햄리트』(1602), 『오델로』(1604), 『맥베드』(1606), 『「리어」왕』(1606) 등 불후의 명작들이 초연 된 것도 바로 이 「지구좌」였다. 당시 30, 40대의 장년이었던 「셰익스피어」는 이들 걸작들의 집필은 물론 연출·출연, 심지어는 10분의 1의 주식까지 소유하여 이 극장을 떠난 「셰익스피어」는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이 극장은 둥그런 다각형의 목조 누각으로 되어있고 그 중앙이 무대였다. 지붕은 밀짚으로 엮은 초가. 관객들로부터 나무 됫박(box office 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으로 거둬들인 돈이 「셰익스피어」에게 톡톡한 밑천을 모아 주었다.
1613년 7월의 어느 날 밤 이 극장에서는 『「헨리」8세』가 상연 중이었는데 효과 담당이 홍에 겨운 나머지 열심히 쏘아댄 효과용 대포알이 초가 지붕에 불을 붙여 극장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지구좌」가 있던 남쪽강변 일대는 지금도 「자유구」라는 이름이 남아있지만 「셰익스피어」시대에는 주로 선술집·각종 유흥시설·매음굴이 들어서 있던, 좀 난잡한 곳이었었다. 「셰익스피어」가 이 곳에 자리를 잡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당시 청교도 세력이 많았던 「런던」시 당국이 연극이나 배우를 백안시하여 「점잖은」배 안에는 극장을 짓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구좌」복건 운동의 기금은 손꼽히는 「셰익스피어」극 배우들이 「셰익스피어」작품 속의 명 대사 한 수씩 왼 것을 「레코딩」하여 판매함으로써 얻는 수익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글로브·디어터」가 수년 안에 다시 옛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게되면 이 극장에서 상연되는 「드라마」는 물론 그 밖의 모든 문화 활동을 「셰익스피어」시대 것 위주로 하여 4백년 전 「엘리자베드」조 문화의 작은 복고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런던=박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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