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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만우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만우절 날이었다.
따뜻한 햇살이 뜰 안에 가득히 비치던 오후 나는 통통한 돼지 새끼들을 우리에서 몰아 내놓고 일광욕을 시키고 있었는데 마침 서울 둘째 아드님 댁에 가셨던 시부모님들께서 갑자기 돌아오셨다.
시부모님께서는 모처럼의 서울 여행이신 만큼 구경도 두루두루 하시고 며칠동안 묶어오실 것으로 생각했던 만큼 뜻밖의 일이었다. 내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려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자 시어머님은
『너 빨리 친정에 가봐라. 네 막내 여동생이 내일 약혼을 한다고 편지를 했다던데 안 들어 왔는 모양이구나. 빨리 서둘러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뜻밖의 소식에 놀라 서둘러 서울로 떠났다.
내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11시가 가까웠을 때였고 밤늦게 불쑥 나타난 나를 친정 식구들이 모두 놀라 반긴다.
놀랄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알고 보니 서울에서 시어머님과 친정 어머님이 만났다는 것도, 더구나 동생이 약혼을 한다는 것도 모두가 거짓말이 아닌가.
너무도 어이가 없어 멍청히 서있는 나에게 마침 전화를 받고 있던 막내 여동생이 갑자기 깔깔 웃으며 수화기를 넘겨주는 것이었다.
천만 뜻밖에도 충주로부터 오는 시어머님의 목소리였다.
친정에 한번 다녀오라고 성화를 해도 만 2년째 매일 같이 20여 마리의 돼지들 기르기에 잠시도 쉴 기회를 못 얻는 나에게 오늘 만우절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했으니 며칠동안 부모 형제들과 재미있게 놀면서 푹 쉬고 오라 시는 시어머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세상에 이같이 흐뭇한 고부간의 만우절이 또 있을 수 있을 까고 생각했다. 나는 어찌나 재미있고 감격했던지 하마터면 수화기를 든 채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안도영<27세·주부·충북 중원군 이류면 신촌 435 이종복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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