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도둑 잡는 차량 블랙박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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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 8월 9일 오후 3시 대구시 동구의 한 새마을금고. 흉기를 든 복면 괴한이 현금 561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금고 직원 증언은 범인을 가려내기에 부족했고 새마을금고 주변엔 폐쇄회로TV(CCTV)도 없었다.

 수사가 벽에 부닥친 것 같던 다음날 아침 사건을 맡은 대구 동부경찰서 강력팀은 30초짜리 동영상 파일을 입수했다. 범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오토바이 판매점을 뒤져 범행 발생 19시간 만에 김모(33)씨를 검거했다.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 동영상은 ‘섀도 캅스(shadow cops·그림자 경찰)’가 제공한 것. 섀도 캅스란 경찰과 협약을 맺고 혹시 자신의 차량 블랙박스에 범죄 관련 영상이 녹화되지 않았는지 찾아내 경찰에 제공하는 시민들이다. 대구 새마을금고 강도사건도 범죄 당시 주변에 섀도 캅스 차량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경찰의 요청을 받고 섀도 캅스인 부동산중개업자가 동영상을 제공했다.

 섀도 캅스들이 활동을 늘려가고 있다. 올 4월 대구에서 처음 만들어진 뒤 경남 마산·진해와 충남 서천으로 확산됐다. 서울·부산 경찰청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현재 대구에 2003명, 진해 132명, 마산 72명, 서천 52명 등 총 2259명이 활동 중이다.

 섀도 캅스는 블랙박스 차량을 활용해 CCTV 사각지대를 메꿔 보자는 대구 동부경찰서 이승일(37) 경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하는 경찰’이란 뜻에서 ‘섀도 캅스’라 이름 지었다. 주로 CCTV가 없는 지역 거주민 중에서 뽑는다. 이들의 차량이 CCTV가 없는 주택가에 장시간 주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곳곳을 돌아다니는 택시 운전사도 있다. 범죄 해결 단서를 제공하면 공헌도에 따라 건당 10만~20만원을 받는다.

 대구에서는 새마을금고뿐 아니라 올 7월 주택가 골목길 성추행범을 잡는 등 섀도 캅스가 제공한 동영상 덕에 4건의 사건이 해결됐다. 진해에서는 차량에 ‘섀도 캅스’라는 스티커를 붙여놓는 것만으로 범죄가 감소했다. 진해경찰서가 올 7~9월 CCTV가 없는 15개 동 골목에 섀도 캅스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을 세워 놓았더니 지난해 같은 기간 507건이었던 해당 지역 주요 범죄가 올해는 481건으로 감소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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