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에 대한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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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사를 되돌아보면 한 국가 사회가 격동기를 맞이했을 때엔 으례 하나의 공통적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도덕심의 마비, 세도 인심의 메마름 같은 현상이 이곳저곳에 벌어져, 사회 전체가 마치 기름 없이 돌아가는 기계와도 같은 불협화음을 내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오늘의 한국 사회의 실정에 비추어서도 너무도 명백하다. 가족간의 우애, 장유유서와 같은 기본 질서가 문란해 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각 개인간에도 사소한 일로 주먹이 오가고 각종 가학 행위와 살인까지가 매일같이 신문지상에 보도되고 있는 것은 그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격동기 사회의 이와 같은 현상들은 그것이 성인 사회의 단면만을 표시하는 경우에는 그다지 크게 걱정할 것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격동기 사회란 다름 아닌 새로운 사회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이 새로운 사회의 핵심 「멤버」가 될 어린이들 사이에서 건전한 「모럴」이 싹틀 맹아만 발견될 수 있다면, 그 자체를 가지고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에 대한 이러한 믿음과 기대는 고래로 여러 가지 형태로 표명돼 왔고 또 인간 생활의 기본 단위가 되는 가정에서는 동서양을 통해 이러한 믿음을 키우기 위한 교육이 쉴새없이 행해져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가진 모든 미물과 일목일초에 이르기까지 그 생명의 존귀함을 가르치는 교육은 양의 동서를 막론한 교육의 첫 과정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의 도덕의 기본 개념인 생명의 외경과, 동양적 도덕의 기본인 측은지심이라는 개념은 어린이들이 강보에 쌓인 시절의 자장가로부터, 좀더 장성한 후의 각종 동화로 또는 구전되는 실화의 형태 등으로 끊임없이 제공되는 정신적 영양소로서 인간 사회가 생성·발전해 가는 가장 본질적인 틀을 잡아 주는 기초적 교육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성인 사회가 장래 할 사회의 틀을 잡는 이러한 기초 교육 활동까지를 멈췄다고 할 때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나 다름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 어린이들 가운데 자기의 동류인 이웃 어린이, 이웃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이 메마르고 하찮은 동물이나 들에 버려진 한 포기 꽃이라 하여 이를 예사로 짓밟고 깔아뭉개는 기풍이 만연하고 있다면 이는 국가 사회의 장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 어린이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도 중대한 병적 증세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이른바 정서 교육의 참뜻은 어린이들에게 이처럼 온갖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외경의 마음을 심어주는 교육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흔히 오해받고 있는 바와 같이 부모들의 허영의 표현으로서의 무슨 무슨 예능 교육과는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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