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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깎고 양복 입은 김한길, 천막당사는 언제 걷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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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소아
정치국제부문 기자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1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앉았다. 두 가지가 달라졌다. 첫째는 말투. “일본의 재무장을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 이게 정부의 입장이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외무장관이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습니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향한 그의 말투는 방송 진행자 출신답지 않게 공격적이었다.

 저돌적인 야당 투사 같은 자세였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외모였다. 시청 앞 노숙투쟁의 상징이었던 수염을 깎았다. 지난 8월 27일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노숙투쟁을 시작한 이후 48일간 거의 매일 입고 있던 체크무늬 셔츠도 벗었다. ‘잘 때 빨아서 아침에 다시 입었다’던 그 옷 대신 양복 정장차림을 했다. 국감을 앞두고 최근 외교통일 전문가들을 만나 ‘과외 공부’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보여줬어야 할 모습으로 나타난 것조차 눈길을 끌고 주목을 받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다.

 김 대표는 국감을 앞두고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대변자로서 민생을 챙기는 대안적 비판자의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 김 대표가 세 번째로 보여줘야 할 달라진 모습은 국회와 길거리에 걸쳐놓은 양발을 모두 국회로 옮기는 것, 즉 ‘양다리 정치’를 끝내는 것이다.

 민주당은 정기국회를 앞두고 원내 복귀를 선언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천막당사는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피로감은 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당 안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국감을 준비하면서 천막당사까지 돌아가며 지키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날도 추워지는데 언제까지 광장에 천막을 치고 있을 건가’란 회의론이 나온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가 몸이 피곤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길거리와 광장에서 할 일은 민주당뿐 아니라 시민단체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 일은 시민단체가 아닌 민주당만 할 수 있다.

 김 대표가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말이 있다. 노벨 평화상은 타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한 파키스탄의 소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6)의 말이다. “의사가 되면 총에 맞은 한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 뿐이지만 정치인이 되면 총에 맞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김 대표가 기왕 ‘대안적 비판자론’을 제시했다면 수염 깎고 체크무늬 셔츠를 벗은 김에 천막당사도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원내외 병행투쟁을 하겠다는 건 두 가지 모두 대충대충 하겠다는 말도 된다.

이소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