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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참여하는 프랑스 연극|본사 주최 불 파리 대 「셰레르」 교수 강연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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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앙일보사·동양방송과 한불 협회가 주최한 파리 대학의 연구 교수 「자크·셰레르」씨의 「현대 프랑스 연극」강연이 31일 하오 5시 「드라머·센터」에서 3백여 연극 학도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1950년부터 20년 동안의 프랑스 연극을 분석한 그의 강연을 요약한다.
오늘날의 프랑스 연극을 얘기하는데는 네 부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1950년의 변동, 둘째는 미학적 발전, 세째는 사회적 발전, 그리고 네째는 1970년의 변동이다.
첫째 부문으로 1950년은 프랑스 연극의 변동기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크나큰 시련을 겪은 후 지식인들은 무언가 변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모든 것이 전과 똑 같았다. 연극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변화 없는 연극에 대해 반항하는 새로운 물결의 연극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이러한 시기에 활약한 극작가로는 「이오네스코」, 「베케트」, 「아다모프」 등 세 사람을 들 수 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프랑스인이 아닌 작가이지만 그러나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한 위대한 작가들이다.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가 최초로 상연됐을 때는 굉장한 말썽까지 빚었고 전혀 엉뚱한 연극으로 생각되었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이제 그는 가장 보수적인 「아카데미·프랑세즈」의 회원이 되었고 그의 작품은 「코메디·프랑세즈」에서 상연되고 있다.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로 69년 「노벨」 문학상까지 타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고 「아다모프」는 두 사람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하고 작년 3월 세상을 떠났다.
이 세 사람이 모두 추상적인 기교 면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이오네스코」와 베케트가 미학적이라면 「아다모프」는 사회적이며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작품이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다모프」의 작품은 사회를 거울을 들여다보듯 알 수 있게 하고 또 사회를 비판하거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이 세 작가 이외에 이 시기에 활약한 극작가로는 『하녀들』『병풍』을 쓴 「장·주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순수한 미학적 탐구를 한 후 그의 시적 기술을 정치적 연극에 사용했다.
둘째, 미학적 발전을 들 수 있다. 50년대 이들의 연극이 어떠한 교훈과 형태를 가져 왔고 또 그들의 주의주장을 분석하는데는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부정적 요소에는 행위의 평가절하, 등장 인물의 평가절하, 언어의 평가절하를 들 수 있다. 종래의 연극에서는 행위가 주였고 행위에는 원인과 동기가 있었지만 새로운 연극에서는 지금까지 행위에 주어진 중요한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
종래의 연극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투쟁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여기서는 인간과 세계의 갈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 새로운 연극 특히 「오베」, 「주네」, 「이오네스코」, 「비예두」등의 작품에서는 등장 인물을 중요시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처리하고 있다. 또 언어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아 「이오네스코」는 말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아다모프」는 잡담하는 연극을 만들었고, 「비예두」는 이상한 말을 새로 만들어 연극에 쓰기도 했다.
긍정적 요소로는 무대의 시각화에 노력이 기울여졌다. 종래의 연극에서와 같이 텍스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장면도 시각화함으로써 연출가들의 작업이 중요해졌고 또 활발해졌다.
또 의미의 다양화로 한마디의 말이 한 뜻만을 갖지 않고 여러 뜻을 가져 함축성 있게 했다.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있어 관객은 고도가 하느님·아버지·사회·또는 「드골」 장군이라고까지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추상화는 새로운 미술·새로운 소설·새로운 영화 등 현대 예술에서의 공통적인 경향인 것 같다.
세째로 사회적 발전에 있어서는 연출에 의한 사회화와 연극의 사회 참여를 들 수 있다. 종래에는 연극이라면 파리의 극장들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파리 교외나 지방에 새로운 극장들이 생겨 더 연극적인 극장이 되었고 연극이 대중 속에 파고들었다. 이에는 「장 빌라르」의 힘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또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많이 다루었고 문학적 갈등과 대학생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순수한 의미의 미학적 작품도 무대에 올려지기가 곤란하게 됐지만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도 추상적이 아닌 전통적 리얼리즘 수법으로는 표현할 수 없게 됐다. 연출 면에서도 대담한 시도를 가져와 꼭 「텍스트」에만 의존하지 않고 시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끝으로 「이오네스코」·「베케트」이후의 70년대의 연극을 얘기 할 수 있다. 이 다시 새로운 연극들은 68년의 학생 데모 사건과 연극의 중심이 파리에서 파리 교회의 극장들로 옮겨진 사실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새로운 연극의 특징은 50년대의 새로운 연극처럼 위대한 극작가를 낳지는 못했다. 이는 연극에서 언어를 경멸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연출 면에서도 대담한 시도를 가져와 꼭 텍스트에만 의존하지 않고 시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또 세계적인 추세지만 나체화를 들 수 있다. 이는 종래의 「에로티시즘」과는 달리 사회의 모든 관습을 대담하게 파괴한다는 뜻이라고 해석된다.
무대와 관객이 밀착된 연극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관객에게 충격을 주려는 방법과 관객들을 연극에 참여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해서 연극은 거리로 나오게까지 됐고 관객들은 어느 의미에서 꿈과 현실 사이를 혼동하게 됐다. 아마도 이러한 형식이 연극에서 이상적인 형식일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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