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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수능' 10만 명 … 인재 몰려도 고민인 1등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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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10월의 수능’이라 불리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가 9만3000명이 참여한 가운데 13일 전국 83개 고사장에서 실시됐다. 이날 시험에는 삼성그룹 임직원 약 1만 명이 관리 요원으로 참여했다. 서울 대치동 단국대 사범대 부속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교문을 빠져나오고 있다. [뉴시스]

13일 오전 6시30분 서울 대치동 단대부속고등학교. 아직 해는 뜨지 않은 시간이지만 학교에는 수험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화장기 하나 없이 검정색 뿔테 안경으로 얼굴을 감춘 여학생, 후드티를 쓴 채 얼굴을 푹 숙이며 들어오는 남학생…. 시험지 운송 차량은 안전요원 2명의 경호를 받으며 비상등을 켠 채 학교로 들어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다음 달 7일)은 아직 3주가량 남았지만, 이날 오전 서울 단대부고를 비롯한 전국 83개 학교에서는 수능 시험일과 다름없는 광경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10월의 수능’이라 불리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SAMSUNG Attitude Test)가 실시됐기 때문이다. 이날 시험은 역대 최다 인원인 10만3000명이 지원해 이 가운데 9만3000명 정도가 시험에 응시했다. 삼성은 이 가운데 5500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이날 시험에서 결시자가 한 교실(35명 정원)당 1~2명 정도밖에 없었다. 상반기 공채 당시 교실당 6~8명이 결시한 것과 비교하면 대폭 줄어든 수준이다. 한 수험생은 “상반기에는 현대차와 시험일이 겹치는 바람에 일부 학생이 SSAT를 포기했지만 하반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감독인원으로만 삼성그룹 임직원 1만 명이 동원됐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진행됐다.

 이날 학생 대부분은 입실 마감 시간(오전 8시30분)보다 1시간 정도 이른 오전 7시30분쯤 고사장에 들어섰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에 지원한 최한별(24·중앙대 경영학과)씨는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라며 “오늘 시험을 위해 여름방학 때부터 매일같이 인터넷 강의를 듣고 관련 서적 2~3권을 풀었으니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뒀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실 통제 시간(오전 8시40분)이 넘어서 도착한 학생 중 일부는 울먹이면서 자리를 떠야만 했다.

 시험난이도는 언어영역은 쉽고 수리영역은 평이했다. 언어영역에서는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복지나 증세 관련 지문이 출제되기도 했다. 하지만 25분간 50문제를 풀어야 하는 직무적성 영역은 난이도가 높게 출제됐다. 예를 들면 카니발리제이션(자기시장 잠식)이란 개념을 물어보기 위해 ‘갤럭시3가 많이 팔려 갤럭시4가 적게 팔리는 것과 유사한 현상을 고르시오’라는 문제를 낸 후, 답으로 ‘쏘나타의 판매 증가로 인해 그랜저 판매가 감소하는 현상’을 택해야 하는 등이다. 이 때문에 수험생 중 다수는 시간이 없어 문제를 찍기도 했다. 삼성전자 마케팅 사업부에 지원한 김상준(26)씨는 “평소 직무상식 영역에서 35개 정도는 정답을 맞혀 자신이 있었지만, 실제 시험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3문제를 찍었다”고 말했다.

  현장을 관리하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가 “우수한 인재들이 삼성을 찾아왔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회사 한곳에 지원하는 현실은 사실 삼성 직원들조차 두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SSAT 응시 인원이 다른 기업보다 월등히 많은 이유는 삼성이 자기소개서를 포함한 서류전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류전형을 없앤 게 수험생들이 SSAT에 대거 몰리면서 ‘삼성 수능’이란 달갑지 않은 별칭을 얻게 된 원인이 됐다는 게 회사 안팎의 분석이다. 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도 2일 “SSAT로 인해 취업준비생, 나아가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하고 있어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조사 결과 SSAT 관련 문제집은 시중에 총 63종이 출판돼 있으며 판매가격도 평균 2만1240원이다. 대학가인 서울 신촌·안암 등지에는 SSAT 대비 ‘족집게 수업’이 최고 25만원에 개설되기도 했다. 수험생들이 평균 두 권의 수험서를 사고 일부가 학원 강의까지 듣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험 대비 비용만 100억원이 넘는다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문제지를 만들어 운송하고, 시험을 감독하는 데 삼성이 부담하는 비용도 2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험을 보기 위해 상경하는 경우 등을 포함하면 SSAT를 치르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은 수백억원에 달한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현행 공채를 전면 폐지하고 구글·IBM 등 미국 기업들처럼 수시 채용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수시채용은 공정성 문제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삼성의 고민이다. 삼성그룹 인사팀 직원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더군다나 삼성이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만 한다고 하면 결과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사람이 많다”고 걱정했다. 취업 전문가들도 삼성처럼 정기적으로 대규모 공채를 하는 기업은 SSAT 같은 인·적성 검사를 실시하는 게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미영 인크루트 상무는 “적은 인원을 채용할 때는 인턴십 등을 통해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일하는 게 정확한 평가 방식이겠지만 삼성처럼 1년에 1만 명가량을 채용하려면 객관식 시험이 가장 공정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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