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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빠진 인터넷 신산업 육성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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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에 있는 종합전시장 벡스코(BEXCO)에서 지난달 25일 열렸던 정보기술(IT) 엑스포(EXPO)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미국 IT업체인 벨킨 기술담당인 케빈 애슈턴의 강연이었다. 곳곳에 흩어져 전시를 보던 관람객들이 속속 모여들어 400여 석의 강연장을 금방 채웠다. 질문도 활발했다. 미 MIT의 자동인식기술연구소인 오토-아이디(Auto-ID)센터 소장을 역임한 애슈턴은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란 용어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래기술 전문가다.

사물인터넷이란 센서가 부착된 우리 주변의 각종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정보를 수집·활용하는 것으로 IT업계에서 급부상하는 개념이다. 삼성전자나 구글·소니 같은 글로벌 업체가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손목시계형 스마트 기기와 현실 모습에 가상 정보를 겹쳐 보여주는 증강현실 글라스 같은 게 사물인터넷의 일종이다.

시장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의 간판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이달 초 ‘사물인터넷의 최강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이를 위해 AT&T·시스코·인텔과 손을 잡는다고 밝혔다. 사물인터넷을 위한 플랫폼 프레딕스(predix)도 공개했다. 제트엔진에서 자기공명영상촬영(MRI)까지 산업 각 분야에서 활용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업계에선 사물인터넷 시장 규모가 올해 2000억 달러에서 2022년엔 1조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정부도 육성에 힘을 쏟는다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사물인터넷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센서 분야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11년 센서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인천 송도에 ㈜지멤스라는 민관 합작기업을 세웠다. 참여 기업은 대부분 중소 IT업체다. 하지만 지멤스는 요즘 기술 부족에다 고객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멤스에 지분을 투자한 한 중소기업 C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에서 좀 도와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시장의 장래성을 보고 수십억원을 넣었는데 다 까먹게 됐다. 아예 처음부터 참여하지 말 걸 그랬다”고 한탄했다.

부족한 건 센서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다른 IT분야가 그런 것처럼 사물인터넷 기술도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발전해 와 관련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도 미흡하다. 정부에선 사물인터넷을 포함한 인터넷 신산업 분야에서 많은 창조기업을 만들고 5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표준화를 비롯한 지원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것 역시 흐지부지되지 않겠느냐며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C대표는 “수십억원을 까먹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분야에서 선두주자가 되고 싶어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도전적 의욕이 꺾여서는 안 된다.

중앙선데이 염태정 경제부문 기자 yonn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