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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감독의 배우 조련법 존중하라, 그럼 최선을 얻을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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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며칠 전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영화 ‘화이’를 보고 난 뒤 자신의 머릿속이라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여진구여진구여진구아뭐지이놈여진구여진구여진구아진짜여진구여진구여진구오마이갓여진구여진구여진구으아징하다 …’.

 이 글을 보니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도대체 여진구의 연기가 어땠기에 그의 연기를 보고 “머리가 하얘졌다”는 걸까.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의 아역을 했던, 고작 열여섯 살짜리 배우다. ‘화이’에서 연기파 김윤석의 아들로 나오는데, 시쳇말로 상대를 ‘잡아먹은’ 모양이다. 정 감독뿐 아니라 제작자, 평론가들이 돌아가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모르긴 몰라도 정 감독의 머릿속을 포함해 이 무서운 배우의 등장에 ‘삘’ 받아 지금 쓰이는 시나리오가 여럿일 것이다.

 모든 감독이 배우와 함께 일하지만, 유난히 배우를 사랑하는 감독들이 있다. 박찬욱 감독은 “나를 영화로 이끈, 어린 시절 좋아한 영화들은 결국 배우를 좋아한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할리우드에 가고 싶은 이유도 딱 하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같이 작품을 하고 싶어서”였다. ‘스토커’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그가 최근 들은 가장 슬픈 소식도, 언젠가 같이하고 싶었던 진 해크먼의 은퇴 소식이란다. 매번 같이한 배우에게 넘치는 애정을 보이는 그는 “연기란, 비평가가 결코 언어로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이라고도 말해 왔다.

 봉준호 감독도 마찬가지다. 스태프에게 겸손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배우들에 대한 존중이 남다르다. 송강호, 변희봉, 김뢰하 등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봉 감독과의 첫 만남에 대해 “톱스타도 아닌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여느 제작자, 감독과 달랐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인 봉준호와 만나 전부 봉준호 사단이 됐다. 봉준호영화의 든든한 축이다. 봉 감독은 아예 자신이 좋아하는 명배우 달랑 한 명만 놓고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국민엄마’ 김혜자의 이미지 비틀기에서 출발한 ‘마더’다.

 이를테면 배우를 그저 자기 작품의 일부로 생각하는 감독과, 관객에게 자신의 세계를 전달하는 진짜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감독은 다르다는 것이다. 전자가 배우를 도구나 부품으로 여긴다면, 후자는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다. 이건 단순히 배우를 존중하는 일일 뿐 아니라 궁극에는 더 좋은 연기를 끌어내는 비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영화에서 관객이 보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배우다.

 존중하라. 그럼 상대에게서 최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말. 이건 감독과 배우의 문제일 뿐 아니라 리더십 일반의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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