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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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년생인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큰애가 다섯 살, 작은애가 네살이다. 이젠 시간이 많이 남는 것 같아 집에서 할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되었고 며칠전 드디어「스웨터」에 수놓는 일감을 얻어왔다. 한가한 낮 시간과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밤에 기다리며 수를 놓다보면 얼마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지루한 생각은 조금도 없어 좋았다. 그렇지만 아빠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문소리만 나면 재빨리 일감을 감추고 나가곤 했다.
처음엔 하루 두장씩만 해서 가사나 아이들에게 무리가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루 두장은 쉽게 할 수가 있어서 엊그제부턴 석장을 가져왓다. 그런데 이제는 아빠가 일찌 들어온 것이다. 슬금슬금 눈치를 봐가며 수를 놓는데 작은애가 문턱에서 넘어진 것이다. 화가난 아빠는 아이들이나 잘 볼 것이지 무슨 큰돈을 벌겠다고 아이들을 울려 가면서 궁상을 떠느냐고 화를 내면서 내일부턴 당장 그만 두라는 것이다.
살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일을 함으르써 조그마한 보람의 기쁨을 가져보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비록 한달의 댓가가 아빠들의 하룻밤 맥주값도 안 되는 보수일망정 여자들은 그런 마음으로 생활한다는 것을 남자들은 조금도 몰라주는 것이다. 이달은 큰애 자전거를 사주고 다음달은 이제까지 언니옷만 물려받아 새옷이라고는 입어보지 못한 작은애에게 예쁜 옷을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뻐하던 마음이 일을 시작한지 보름도 못되어 끝이나고 말았다.
고예정<서울서대문구녹번동131의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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