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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업 1세기… 프랑스의 필적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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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4면

「발레리·지스카르테스텡」 「프랑스」 재정상의 글씨를 보면 지면이 온통 날개치는 새들로 꽉찬 느낌이다. T자는 모조리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필적을 통해 「지스카르데스텡」씨는 이미 널리 알려진 그대로, 자기가 대단히 야심만만한 사람이며 세련되고 예리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필적 학회는 지난 3월 20일로 창립 1백주년을 맞았다. 일찌기 낭만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에 필적학은 하나의 사교계 필수 도락으로 통용되었다. 낭만주의 시인 「조르지·상드」도 거기에 심취했다.
그러나 70년대의 필적학은 경우가 좀 달라져서, 질병을 진단하고 벼슬자리에 앉힐 적격자를 골라내기도 하고 범죄 수사에서까지 일조를 하고 있다.
결혼 중매장이들은 남녀의 짝을 맺어 주거나 장래에 바람직한 배우자를 알려주는데 필상을 이용하기도 한다. 「레이몽·드·마지에르」란 필상가는 『이미 1천년 전에 일본인들은 부모가 정해준 배우자의 초상보다는 필적을 더 중요시했다』면서 관상보다도 필적에 사람의 성격·능력이 더 잘 반영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필적학회회장 「수잔느·브레사르」 여사는 필적학을 일컬어 『관찰의 과학이며 해석의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필적학을 개척하고 발전 보급한 「공로자」는 옛날의 「가톨릭」신부로 알려져 있다.
14세기의 수도승 「장·이폴리토·미숑」이 그 당시 필적학의 권위로서 집필자의 손과 심장의 고등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마치 곤충학자와도 같은 열의를 가지고 수천 종류의 필적, 가령 수전노와 사기꾼의 필적은 어떻다는 식으로 분류해 냈다.
『필적엔 흑백의 예편처럼 사람의 근성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단적으로 나타난다』고 그는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와 필적학은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진지하게 학문적으로 연구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사람 「즐·크레피외·자멩」이, 독일인 「루드비히·클타게스」, 「스위스」인 「막스·풀퍼」 등이 특히 이름을 날렸다.
1939년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진은 필적학의 결론들을 정신분석학·인류학·의학의「데이터」들과 비교 연구한 결과 80%가 일치한다는 걸 입증했다.
그 결과 필적학은 정신병과 의한 보조 과학으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필적학은 보다 객관적인 형태 분류법인 필적 감정학으로 발전, 이어서 관상학과 결합시켜 운명 감정을 하기 시작했다.
「로베르·데니스」란 필적 학자는 지금도 「파리」에서 성업 중인데 필적과 골상을 비교, 관찰해서 점을 친다.
「미셸·에르베르」란 저명한 건축가도 『필적학으로 나는 상대방의 성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감탄한바 있다.
「프랑스」의 일부 병원에서는 필적을 보고 환자가 완쾌되었는지 안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자료로 삼기도 한다.
특히 「노이로제」 등 정신신경질환의 경우, 환자의 필적은 진단에 중요한 보조 역할을 한다. 「베레사르」여사는 30년대 시절의 청년 「니체」의 필적과 만년의 미쳤을 때의 「니체」의 필적을 비교하면서 이점을 밝히고 있다. 그의 초기의 필적은 『서정과 섬세한 감상의 발랄성』이 충만했었으나 말기의 것은 『어딘가 끈끈하고 뒤죽 박죽 되고 무력한 데가 엿보인다』고 「베레사르」 여사는 주장한다.
「프랑스」의 「잔느·브르네」란 여류 필적 학자는 언젠가 어떤 사람의 글씨를 보더니 『끔찍하다. 공동묘지로 가겠는걸』하고 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과연 그 글씨의 주인공은 이미 몇주일 앞서 목매달아 죽은 사람으로 밝혀졌던 것이다.
이건 모두 거짓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필적학은 앞으로 광기를 고치거나 자살을 예방하는 일까지 겸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것은 의사나 정신 분석학자들도 아직 완결하지 못한 과제다.
이젠 필적학은 심리학적 연구 과제로서 하나의 과학으로 정립될 단계에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 <렉스프레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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