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백두산에 미사일 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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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근 백두산 인근 고산지대에 지하 미사일 기지 건설을 완료했다고 복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9일 “북한이 백두산 남방으로 수㎞ 떨어진 해발 2000m가량의 소백산 일대에 미사일 발사 격납시설인 사일로(silo)를 여러 곳 건설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2000년대 중반부터 공사를 시작해 최근 마무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시설 규모나 설치 장소로 봤을 때 중거리 이상의 미사일 발사 시설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새로 건설한 사일로가 여러 곳이어서 모두 발사가 가능한 시설인지 여부를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괌이나 일본 오키나와를 사정권에 두는 3000㎞ 이상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실전 배치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괌·오키나와는 유사시 한반도를 지원하기 위한 미군 병력과 물자를 대기시키는 후방기지다. 이동식 미사일과 함께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와 평안북도 철산군 철산리에 장거리 로켓 발사대를 갖고 있는 북한이 추가로 백두산 중거리 미사일 기지까지 확보함으로써 한반도엔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북한은 평양~원산 축선 인근의 단거리 미사일로 남한을 공격하고 중거리 미사일로 괌이나 오키나와를 공격하는 시나리오를 만든 것 같다”며 “이동식 발사대와 사일로를 이용해 다양한 전술 구사가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관련, 정부는 그동안 “개발 단계에 있으나 실전 배치 단계엔 이르지 못한 것”으로 평가해왔다. 하지만 2년여 전부터 한·미 정보당국은 군사위성의 하나인 KH 계열의 위성 등 정보자산을 동원해 집중 감시한 결과 미사일 기지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또 북한이 지난해 미사일지도국을 전략로켓사령부로 확대하고 사령관에 김정일의 측근이던 김락겸 중장(별 둘)을 임명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새로 건설한 소백산 일대 사일로는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불과 수㎞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유사시 한국이나 미국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곳을 선정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정보 당국자는 “유사시 북한의 미사일 시설은 한·미가 보유한 미사일이나 전투기를 이용해 타격하게 되는데, 중국 인근의 가장 깊숙한 내륙에 미사일 기지가 위치해 있다면 자칫 미사일이 중국에 떨어질 수 있고 전투기 접근이 쉽지 않아 공격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백두산 일대는 산세가 험해 외부 노출 우려가 없어 은폐가 용이하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일대 지형에 대해 북한 당국은 “1980년대 중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향집을 찾기 위해 당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여러 차례 찾았지만 지대가 험해 접근이 어려웠고, 나무가 우거져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였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백두산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 활동을 벌였던 본거지인 데다 김정일 위원장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곳이어서 정치적 상징성도 큰 곳이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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