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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한복판까지 '메뚜기 시장'… 생필품 대놓고 암거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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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평양 중심가인 영광거리 뒤편의 메뚜기시장. ① 개나 돼지로 보이는 고기를 직접 손질해 길거리에서 판매하거나 ② 음식을 조리해 팔기 위해 화덕에 불을 붙이는 모습. ③ 특권층들이 사는 고층아파트 뒤편에 늘어선 주민들의 시장 모습이 북한 경제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듯하다.

북한 주민들이 당국의 단속을 피해 불법으로 시장을 여는, 일명 ‘메뚜기 시장’의 생생한 동영상이 공개됐다. 9일 본지가 북한 내부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이 영상에는 평양 번화가인 영광거리에 인접한 메뚜기 시장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장사 모습이 담겨 있다. 메뚜기 시장이란 말은 주민들이 단속원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물건을 팔고 있는 데서 나왔다.

 동영상에 나오는 시장은 대로변 바로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시장에서는 대부분 50~70대 여성인 장사꾼들이 보도블록 바닥에 화장품과 비누·약품 등 생활필수품을 펼쳐놓고 판매하고 있다. 직접 재배한 듯한 파와 고추 같은 야채도 거래된다. 개나 돼지로 추정되는 고기를 한여름인데도 냉장설비 없이 도마에 올려놓고 흥정하는 장면도 있다. 일부는 국수나 옥수수빵·구이 등을 판매하기 위한 듯 화덕에 숯불을 붙이려 연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소식통은 “공산품의 경우 대부분 중국산이지만 화장품과 약품 등 일부는 한국산·일본산도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인도를 따라 30~50여 개가 줄지어 늘어선 매대는 대부분 보자기나 비닐을 깐 채 소규모 품목을 팔고 있다. 폭 3~4m의 도로가 장사꾼들에게 점령돼 길을 지나는 주민들이 차도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은 메뚜기 시장이 상당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사회주의경제의 통제망을 벗어난 농민시장 등이 늘자 2008년 청진 수남시장 폐쇄를 시도하는 등 단속의 고삐를 죄어 왔다. 하지만 2009년 11월 화폐개혁 직후 추진한 종합시장 해체 작업은 ‘돈주(시장에서 큰돈을 벌어들인 자본세력을 지칭)’의 반발로 불발에 그쳤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국이 용인한 평양 통일거리 시장 등의 경우 자릿세가 비싼 데다 최근 들어서는 이를 국가유공자 등에게 불하하는 바람에 일반 주민들은 거리장사로 나설 수밖에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조봉현 기업은행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북한 주민 사이에 ‘돈이 최고’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메뚜기 시장 같은 상행위가 평양과 지방도시에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난으로 상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암거래 시장이 산소호흡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국도 단속보다는 묵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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