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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문제는 '전관예우성 취업' 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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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최근 5년 동안 퇴직한 고위 공무원들의 재취업 현황에 관한 본지 보도(10월 8일자 1, 3면·9일자 3면)를 놓고 정부기관과 기업의 해명 전화가 빗발쳤다.

 경찰청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민간기업에 취직한 경찰공무원이 157명이고 이 중 다수가 보험회사로 진출했다는 내용과 관련해 “대부분 생계형 취업임을 감안해 달라”고 했다. 경찰의 경우 6~7급에 해당하는 경위·경사까지도 재취업 심사 대상이 되기 때문에 통계에 잡혀 숫자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 대기업도 검찰 간부 출신 4명을 영입했다는 내용과 관련해 “4명 중 2명은 검찰 6급 공무원이라 ‘간부’로 보기 어렵다”고 전해 왔다.

 금융위원회는 재취업한 퇴직 공무원 수가 113명이 아니라 12명이라고 알려 왔다. 확인 결과 113명은 안전행정부에서 자료를 정리할 때 금융위뿐 아니라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소속 공무원 등을 다 포함한 수치였다. 하지만 이 기관들은 모두 금융위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

 어떻든 본지 보도의 취지는 특정 기관의 재취업 퇴직자 수가 많고 적은 걸 가리자는 게 아니다. 안전행정부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실에 제출한 지난 5년간의 재취업 심사 대상 자료를 분석해 보면 특정 기관과 특정업계 간 ‘연결망’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6, 7급 공무원들의 생계형 재취업을 어렵게 만들자는 게 아니라 정부기관과 업계의 유착 구조가 고착화되지 않도록 심사를 강화해 ‘전관예우성 재취업’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가령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고위 공직자가 은근히 자신이 속한 대기업에 관한 조사를 미뤄 달라고 ‘친정’에 부탁해 온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현직 공무원 입장에선 청탁을 거절할 경우 고위직 출신 인사가 동네방네 무슨 흠을 잡고 다닐지 알 수 없고, ‘꺼진 불’인 줄 알았던 이 인사가 민간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은 뒤 더 높은 지위로 발탁될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고민에 빠질 것이다. 아예 고민은 고사하고 ‘나중에 옷 벗으면 내가 가야 할 곳도 저기인데…’라는 생각에 청탁을 무슨 당연한 요구쯤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특정 기관과 업계에 연결망이 형성돼 있는 사회에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 있다. 이런 사회가 과연 ‘공정사회’일까.

 고위 공직자들의 전관예우성 재취업을 차단해야 할 책임은 당연히 정부에 있다. 하지만 재취업심사 대상 공무원의 92.7%에게 ‘취업 허가증’을 내주고 있는 곳이 바로 정부다. 이 문제를 추적하기 위해 언론이 나서야 했던 이유다.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