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앳된 여진구 얼굴에 … 배신감·분노가 넘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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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구는 “난 아직 하얀 도화지다. 뭐든 흡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사진 전소윤(STUDIO 706)]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9일 개봉)는 감독부터 주목을 받았다. ‘충무로의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2003)의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다섯 명의 잔혹한 범죄자를 ‘아빠’라 부르며 자란 소년 화이(여진구)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아빠들과 대결하는 줄거리다. 킬러들 손에 킬러로 자란 아이라는 비현실적 설정을 과감히 밀어붙이며 애정과 증오, 선과 악, 아들과 아버지 등등 최근 한국영화에 보기 드문 풍부한 상징성을 펼쳐 보인다.

 ‘화이’의 또 다른 발견은 타이틀 롤을 맡은 여진구(16)다. 김윤석·장현성·김성균 같은 쟁쟁한 선배 사이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지난해 화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의 아역으로 나왔던 그의 앳된 얼굴에 깊이가 더해졌다. 1년여 만의 큰 성장이다.

 장 감독은 “순수함과 악마성이 공존하는 배역이다. 여진구라는 배우가 주는 떨림과 깨질 것 같으면서도 강한 느낌에 욕심이 났다”고 했다. 영화에서 화이는 극단적 감정을 겪게 되지만 직접 만난 여진구는 영락없는 열여섯, 해맑은 소년이었다.

 -‘아빠’라 불러온 어른들에 맞선다. 화이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겠다.

 “다섯 아빠에게 맞서는 게 처음에는 분노와 배신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이란 인물을 파면 팔수록 새로운 감정이 보였다.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했지만 솔직히 화이의 밑바닥을 봤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지금도 화이가 어떤 아이인지 잘라 말하기 힘들다.”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인물을 어떻게 연기할 수 있나.

 “캐릭터는 머리로 연구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일단 실마리를 찾으면 뭔가 최면에 걸리는 기분이 들면서 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떤 배우들은 시나리오에 메모를 많이 한다는데 내 시나리오는 깨끗한 편이다. 시나리오에 굵직한 흐름만 써놓고 촬영장에서 그때그때 감정을 느끼려고 한다.”

 -아빠들 중에도 리더인 석태(김윤석)와 맞붙을 때 특히 감정이 복잡했을 텐데.

 “정말 무서웠다. 김윤석 선배가 갑자기 너무 무섭게 느껴져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영화 속 상황에 몰입됐다. 전에는 주로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주로 연기했기 때문에 혼자 속으로 ‘내가 이끌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선배들을 믿고 따라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석태가 화이만큼은 자식처럼 키운 속내를 드러내며 ‘괴물이 돼야 괴물이 없어진다’고 말하는데, 어떤 의미라고 생각했나.

 “사람에게 점점 더 큰 일이 닥치면 전에 겪었던 작은 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걸 말하는 것 같다. 화이가 사람에게 처음 총을 쏠 때는 벌벌 떨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죄책감을 덜 느끼는 것처럼.”

 -지난해 히트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길에서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긴 하다. 그럴 때마다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서면 금방 다시 헬렐레해져서 다닌다. 원래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다.”

 -평소 여진구는 어떤 성격인가.

 “덜렁대는 편이다. 연기할 때는 굉장히 집중하는데, ‘컷!’ 소리가 나면 방금 전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연기했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많다. 그래서 꼭 모니터 화면을 확인하곤 한다.”

 -배우 재능을 타고 났다고 보나.

 “끼가 있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또래 배우 중에 김유정이나 김소현을 보면 정말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느낌이다. 나는 노력파다. 캐릭터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인데, 아직까지는 나 혼자 캐릭터를 만들지는 못한다. 감독님이나 선배님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한다.”

장성란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강성률 광운대 교수): 신화적 스토리보다 묵직한 스타일의 힘. 다른 이의 시나리오로 ‘자신의 영화’를 만든 능력이 돋보인다. 역시 장준환!

★★★☆(임주리 기자): 단순하게 보면 잔인한 복수극이되, 한 꺼풀씩 벗겨낼수록 새로운 물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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