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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 임을 선언하노라…』. 또 한번 우리는 독립선언서를 읽는다. 그러나 1919년 탑동 공원에서 처음 듣던 때의 감격을 우리는 지금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신예와 독창으로써 세계 문화의 대조류에 기여보비 할 기연을 유실함이 무릇 기하뇨….』
이렇게 나라 없는 설움을 한탄한지 얼마가 지났는지. 그리하여 나라만 찾으면 『아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야 춘만한 대계에 민족적 정화를 결뉴할 지로다』하고 다짐한지 얼마가 지났는지.
이제 우리가 나라를 찾은지도 4반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그동안에 우리는 과연 『신예와 독창』을 얼마나 발휘했고 얼마나 『세계 문화의 대조류』에 기여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지.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달을 수하려 하면, 가련한 자제에게 수치적 재산을 유여치 아니 하려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필요하다는 독립을 얻고 집을 세우고 길을 닦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누구나 고른 기회를 갖고 몸과 마음을 가꿔 나가는데 탈이 없다고 볼 수 있겠는가?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꾸며가며 있다고 누구나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 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내하도다….』
터무니없는 기대와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이 나마 가질 수 있던 조부의 시대가 지금에 와서는 덧없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도의는 가시고 오히려 위력만이 어디서나 느껴지는 오늘의 세대인 것이다.
『양심이 아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하는 도다…」 이만한 자부와 신념을 이제 감히 누가 갖고 있다는 말인가. 한없는 회의와 자기 부정과 자기비하로 하여 날로 좀 먹혀가고만 있는 우리들은 또 아닐까.
분명 무엇인가 병들고 있다. 무슨 병인지 속시원히 말해 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더욱 병들어만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봄이다.
『신춘이 세계에 내하야 만물의 회소를 최촉하난도다….』
세월이 바뀌고 말귀가 달라지고 역사가 뒤틀려져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자연뿐인가 보다.
오늘부터 3월. 비가 내려도, 또 아무리 하늘이 꾸물거려도 봄의 기상 나팔 소리가 메아리져 들린다.
분명 그 속에는 신천지를 울부짖던 부조의 소리도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지금 몇 사람이나 가려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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