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교육에 유신 반세기|정년 퇴직하는 한국 첫 여교장 오정화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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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6일 하오2시 서울 영희 국민학교 교정에선 반세기를 교단에서 보낸 한국최초의 여교장 오정화씨의 정년 퇴임 식이 열린다. 지금부터 49년 11개월 전인 1921년3월13일 경성여자고등 보통학교(현 경기여고를 갓 나온17세의 어린 나이로 개성 여자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첫 부임한 이래 오 교장은 그 동안 10개 교에서 평교사로 26년, 교장으로 24년을 교직자로 보냈다.
『정말 어려운 시기에 벅찬 일들이었어요. 내가 지내온 일생에 후회는 없지만 올바른 교육을 향한 나의 큰 포부를 교분에서 다 이루지 못해 서운할 뿐입니다.』
24일 학기말 종업식까지 마치고 퇴임의 준비를 하고 있는 오 교장은 일본치하에서 일본말 교육을 해야했던 시절을 가장 가슴 쓰라리게 기억하고 있다.『그래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몸과 정신을 갖도록 기회 있을 적마다 구체적으로 돌봐주었다고 지금도 자부하고 있읍니다.』어려운 시기를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것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회상했다.『그러나 요즘의 교육제도 큰일입니다.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해요. 국가는 물론 부모와 교사가 똑같이 책임져야지요.』집에서는 어머니의 거친 말솜씨를 배우고 학교에선 기계로 찍어내는 듯한 획일 교육, 길거리는 온통 위험 투성이의 현실에서 나라의 기둥이 어떻게 튼튼할 수 있겠느냐고 오 교장은 안타까와한다.
『하기는 옛날에는 글만 가르치면 됐는데 요즘 교사들은 산더미 같은 공문 속에서 박봉에 사무까지 겹쳐 신경질이 안 날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내 자식을 키우듯이 사랑으로 모든 것을 녹여야지요.』겨울 추운 날 난로 곁에서 두루마기 앞자락을 따끈하게 쬐어 등교하는 어린이들 고사리 손을 녹여주었던 오 교장은 사랑을 교육의 기본이라고 했다. 종로 국민교에선 곱추제자를 위해 학교에 등나무를 심어놓고『이 등나무가 뻗듯이 싱싱하게 자라라』고 위로하기도 했다.『원래 뻣뻣한 O형 성격』이라 호랑이 선생님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는 오 교장은『아이들과 선배들의 사랑 속에 세월 가는 줄 몰라 결혼할 여가가 없었다』고 한다. 퇴임 식 때 눈물을 홀릴까봐 큰 걱정을 하고있는 오 교장은 앞으로『50년의 회고』와 어린이들의 안전교육에 대한 책을 내고싶다 한다.<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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