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주 68 → 52시간 단축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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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7일 당정협의를 열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기로 재확인했다. 지금은 휴일근로(16시간)와 연장근로(주당 12시간), 법정 근로시간(주당 40시간)을 합쳐 주당 근로시간이 68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정부와 여당의 안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킴으로써 주당 총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날 김성태(새누리당) 의원은 당정협의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현옥 고용노동부 차관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행할지는 노사정 간에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임금체계 개편을 비롯해 논의해야 할 부수적인 사안이 많다”고 말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정현옥 차관이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환경노동위원회·고용노동부 당정협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당정은 이날 정기국회 중점 처리 법안과 노동부 소관 국정감사 쟁점 현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뉴스1]

 휴일근로시간을 연장근무에 포함시키는 방안은 지난해 1월 이채필 전 고용부 장관이 처음 공론화했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전 장관이 공론화한 뒤 1년9개월여간 노사정이 협의를 했고, 지금은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데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 생산성 향상과 같은 연착륙 방안을 두고 노사 간에 대립 중이다.

 2010년 말 현재 휴일근로수당은 전체 임금의 13.26%에 달한다. 법으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면 근로자의 소득은 그만큼 줄게 된다. 사측(한국경영자총협회 김동욱 기획홍보본부장)은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임금이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고, 노동계(한국노총 강훈중 홍보본부장)는 “근로시간이 줄더라도 기존 임금수준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의 생각처럼 근로기준법을 개정한다고 기업과 노동시장이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속도로를 깔아 놓으면 차가 달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법으로 강제하면 이에 맞춰 기업과 노조가 움직일 것이란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모 그룹 관계자는 “역대 어느 정부도 노사정이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한 경우는 없다”며 “도로(임금체계 개편 등)도 없이 자동차(근로시간 단축)만 만들어 놓고 달리라는 격”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근로시간 단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7일 논평을 내고 “기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법 개정 논의에 대해 안타까운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제락 중기중앙회 인력지원본부장은 “당정 합의안이 당초 의원 입법 내용보다는 대폭 완화됐지만 중소기업들은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휴일근로를 실시하고 있다”며 “대책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대·중소기업 양극화만 심화시키고 중소기업에만 부담을 안기는 현실성 없는 처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 국책연구원이 잇따라 경고메시지를 냈다. 주무현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간된 월간 노동리뷰에서 “의무적 근로시간 단축의 고용효과는 임금반응에 의해 결정된다”며 “임금의 감소 없이는 고용이 증대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줄어드는 임금을 전액 보전하거나 일부 보전하면 고용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덧붙였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임금 인하가 가능하도록 하고, 대신 근로자들의 소득안정을 위한 고용보험과 사회복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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