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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이 '아메리칸 드림'인 사람들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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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을 받자마자 부모님께 물려받은 중고차를 운전하고 다닐 때였다. 경찰도 초보 운전자를 알아보는지 매년 적어도 한 번은 티켓을 받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주 차량국(DMV)에서 통지서가 날아왔다. 통지서에는 운전면허증을 갱신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소셜시큐리티 번호와 체류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라고 쓰여져 있었다. DMV 사무실에 찾아가니 이민국 빌딩 앞과 맞먹을 정도의 줄이 길었다. 하루종일 줄 서 기다리면서 지쳐갈 때 함께 줄 서있던 많은 이민자들은 소셜시큐리티 번호가 없다, 영주권 카드가 없다는 이유로 면허증을 갱신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DMV가 운전면허증 신청자에게 소셜번호나 체류신분을 증명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건 1993년부터다. 그전까지만 해도 캘리포니아주는 신청자의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만 제출하면 누구나 면허증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락했었다. 당시 한국어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허용한 지도 얼마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한인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그것도 LA에서 한국어로 운전면허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기뻐하면서 쉽게 면허증을 신청해 받았다.

주정부가 운전자에게 체류신분을 요구한 후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운전 스트레스다. 그 전까지만 해도 도로에서 운전이 그렇게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갈수록 사람들의 운전이 험악해졌다. 상대방 차량에 대한 양보도 줄어들었고 운전자들은 불친절해졌다. 뺑소니 사고도 늘었다. 실제로 쇼핑몰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접촉사고로 찌그러졌지만 상대방 운전자가 도망가 난감했던 경험도 있다.

무면허 운전자들은 사고가 일어나면 무조건 도망친다. 교통경찰이라도 나타나면 자칫 차량을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LA시의 경우 경찰이 견인해 간 차량을 다시 찾으려면 최소 수주의 시간이 걸리는 데다 벌금과 각종 비용으로 1000달러가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감당하기엔 비용이 너무 크다.

지난 해 DMV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가주 도로를 달리는 무면허 운전자는 140만 명에 달한다. 무면허 운전자의 대부분은 불법체류자(불체자)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불체자가 거주하다 보니 무면허 운전자 인구도 미국에서 가장 많다.

이들은 직장이나 학교를 가기 위해 차가 필요하지만 체류신분을 증명할 수 없어 무면허로 운전하고 다닌다. 교통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운전을 하려니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DMV 통계는 무면허 운전자 사고율이 면허증 소지자보다 3배나 높다고 밝혔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드디어 불체자도 운전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AB 60)에 지난 3일 서명했다. 주의회에서 관련 법안을 추진한 지 12년 만이다. 10년 전인 2003년 그레이 데이비스 전 주지사는 비슷한 법에 서명했다가 소환당한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칠순이 넘은 브라운 주지사는 뚝심있게 밀어붙이더니 결국 불체자에게 면허증 발급을 허용시켰다.

LA시청 앞에서 열린 서명식에는 100여명이 넘는 이민자 단체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몰렸다. 이들은 브라운 주지사가 서명한 법안을 들어보이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제 제대로 교통법을 배우고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보였다. 서명식을 지켜본 한 이민자는 "운전면허증은 내게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이제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불체운전자들의 '편안한' 운전덕에 도로가 훨씬 안전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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